[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버지는 집을 지었다.
아들은 집을 떠났다.
그리고 떠난 아들은 평생 집을 만들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서도호의 ‘집’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자란 곳은 부모가 지은 한옥이었다.
모두가 서양식 아파트를 선망하던 1970~80년대였다.
부모는 거꾸로 한옥을 택했다.
철거되는 옛집의 목재와 창호, 철물을 모았다. 장인을 찾아 집을 지었다.
어린 서도호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집을 떠나는 데는 하루가 걸렸지만, 그 집을 다시 만나는 데는 평생이 걸릴 줄은.
서도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뉴욕에서 살았고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멀어지자 집이 보였다.
떠나지 않았다면, 그 집을 알았을까.
그는 떠나온 집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벽과 복도, 계단과 문, 전등 스위치와 손잡이까지 떠냈다.
재료는 얇고 반투명한 천이다. 빛이 스며든다.
무거운 건축이 가벼워졌다.
접을 수 있게 됐다.
가방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국경도 건널 수 있게 됐다.
집을 떠난 사람이 집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집은 그를 따라 세계를 떠돌았다.
2018년 런던 웜우드가 육교 위에는 한옥 한 채가 먼 곳에서 날아온 듯 내려앉았다.
땅에 뿌리내려야 할 집이 낯선 도시의 공중에 비스듬히 걸렸다.
사람이 이주하자 집도 이주했다.
하지만 서도호가 옮긴 것은 집만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만든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그 안에 들어가면
옛날로 되돌아가는 듯한 ‘프루스트 효과’를 느낀다고 했다.
몸은 지금 이곳에 있는데 기억은 그때 그곳으로 간다.
공간을 옮겼는데 시간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의 투명한 집은 묘하다.
사람은 없는데 사람이 있다.
시간은 지났는데 시간이 남아 있다.
집은 사라졌는데 집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다.
떠나온 집.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방.
이제는 없는 사람과 함께했던 자리.
공간을 기억하면 시간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온다.
집은 건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을 지나간 시간.
함께 살았던 사람.
그때의 나.
물론 오늘 우리에게 집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집은 자산이고 계급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가르는 숫자가 됐다.
누구에게는 여러 채의 집이 재산이고,
누구에게는 한 채의 집조차 평생 닿기 어려운 꿈이다.
그런데 서도호의 집에는 가격이 없다. 평수도, 시세도 없다.
남는 것은 그곳을 지나간 시간과 사람의 흔적이다.
서도호의 집이 세계 어디에서나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한옥이 세계의 낯선 도시에 펼쳐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서도호만의 집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떠나온 고향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부모의 집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이 된다.
가장 개인적인 기억이 가장 보편적인 기억을 건드린다.
한옥에는 국적이 있다.
그러나 그리움에는 국적이 없다.
우리는 떠나는 것을 흔히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에는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향이 그렇다.
부모가 그렇다.
젊음이 그렇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거리는 상실을 만든다.
그러나 거리가 시야를 만든다.
서도호는 이번 서울 전시에 ‘회향(回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30년 넘게 세계를 이동하며 집과 기억을 좇아온 작가가 다시 자신의 시작을 바라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떠나온 집도 예전의 집이 아니다.
그 집을 떠났던 사람 역시 그때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사는 일이 아니라 다시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집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지겨웠던 하루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늘 곁에 있던 사람도 어느새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삶은 지나간 장면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 예술이 그 일을 한다.
사라진 집을 다시 세우고,
흘러간 시간을 불러오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서도호의 투명한 집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어쩌면 그의 집만이 아니다.
저마다 떠나온 집이다.
그곳에는 아직,
한때 그 집에 살았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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