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처벌불원' 여전히 감경요소…양형기준서 빼야"

기사등록 2026/08/27 17:42:28 최종수정 2026/08/27 18:54:24

성평등부, 판사·검사·변호사 등 참여 젠더폭력 양형기준 포럼

성범죄 양형기준 준수율 87.6%…디지털성범죄는 79.9% 그쳐

"처벌불원, 양형기준서 빼야" vs "피해회복 위해 고려할 필요"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폭력 이후, 법원의 시간-젠더폭력 사건의 양형 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08.27.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정유진 수습 기자 = 지난 2013년 성범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처벌불원' 요소가 감형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고를 앞두고 이뤄진 형사공탁이나 범행과 직접 관련 없는 피고인의 사정까지 양형에 유리하게 고려되는 사례도 확인되면서 법원 내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행위와 무관한 감경요소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평등가족부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폭력 피해 이후, 법원의 시간, 젠더폭력 사건의 양형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를 주제로 젠더폭력 양형기준 포럼을 개최했다.

성평등부에 따르면 2021~2023년 성범죄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87.6%, 디지털성범죄는 79.9%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군의 평균 양형기준 준수율 91.1%보다 각각 3.5%포인트(p), 11.2%p 낮은 수준이다.

이날 한민경 경찰대학 행정학과·치안대학원 범죄학과 교수는 '법원의 젠더폭력 사건 양형기준 적용 실태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은 특별양형인자의 감경요소로 규정돼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서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경우 일반양형인자 감경요소로,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이나 허위영상물 반포 등의 경우에는 특별양형인자 감경요소로 반영된다.

한 교수는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처벌불원이 감형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젠더폭력 판결 사례 분석을 토대로 "강간 등 성범죄 범행의 중대성, 원치않는 임신·유산 등 피해 결과의 심각성, 미성년·장애 등 피해자의 취약성을 막론하고 대부분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범죄자는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하며 금전으로 자신의 범행을 무마하거나 1심 선고 후 형량을 낮추려고 시도한다"며 "그 결과 원심은 실형, 항소심은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패턴이 나타난다"고 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사촌 누나를 수년간 강제추행하고 간음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1심 징역 4년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특히 선고를 앞두고 '기습 공탁'을 하거나 전체 피해자가 아닌 특정 피해자에 대해서만 공탁한 경우도 감경 사유로 보는 사례가 있었다. 피해자가 수령 거절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제한적으로 참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피고인의 개인적 사정이 감형에 고려되는 사례도 문제로 제시됐다. 공무원인 피고인이 직장을 잃은 점이나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된 사례가 있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폭력 이후, 법원의 시간-젠더폭력 사건의 양형 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08.27. mangusta@newsis.com


디지털 성범죄에서는 양형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사유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례도 문제로 지적됐다.

양형기준상 '형사처벌 전력 없음'은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에는 제외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다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반복 범행한 경우에도 '초범'이나 '동종 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았다는 점, 피고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압수 등으로 유포되지 않은 경우까지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되는 사례가 있었다. 허위영상물 범죄로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다는 점도 별도의 감경요소가 아님에도 양형에서 참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성범죄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을 삭제하고,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회복 감경요소에 포함된 '공탁 포함' 문구도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감경요소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유포·반포되지 않음'이나 '영리 목적·경제적 이득 없음'을 감경 사유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형기준에 대한 법원 내 교육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도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실제 재판에서 지나치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4년 디지털성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양형기준에 명시된 감경요소 외의 사유가 실제 판결에서 추가·확장되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피해자 의사가 갈리는데, 한 명만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도 피고인에게는 도움이 된다"며 "배상명령 제도를 통해 정식 보상으로 나아가야지, 양형으로 참작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역시 "피해자에게 처벌이냐 돈이냐를 피해자에게 선택하도록 한다"며 "'네가 합의해주면 감옥에 안 갈 수 있는데'라는 선택권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크다. 처벌불원 요소를 특별양형인자로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반면 처벌불원을 양형기준에서 일률적으로 삭제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한얼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감경요소가 과하게 참작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피해회복의 기회를 위해서라도 양형에 반영해야 한다"며 "민사적으로 배상받을 기회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시간과 금액을 고려할 때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어렵다"고 했다.

또 "피해자 의사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변호사 역시 "처벌불원이 지금처럼 작동하는 건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양형기준에서 이를 삭제하는 데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과나 2차 피해 중단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피해자로서는 처벌불원이라는 권리를 통해 수사기관 밖에서 협상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광진 의정부지법 판사는 특정 감경 사유 하나만으로 판결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최 판사는 "특정 사안 하나 때문에 그 판결이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양형기준상 권고형량을 정하는 단계와 집행유예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 등이 구분돼 있고, 최종 선고는 여러 양형인자와 형법상 사정을 종합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개별 죄명보다 젠더폭력이 발생한 관계적 맥락이 양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범죄 죄명과 상관없이 권력관계, 통제·지배, 피해 특성이 양형기준에서 일관되게 포착되도록 해야 한다"며 친밀한 관계에서 가해자의 접근 가능성이 피해를 키우는 경우 이를 가중요소로 반영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제시된 의견들을 관련 연구 결과와 함께 검토해 향후 젠더폭력 대응 정책과 제도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하반기에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다시 보는 기회가 있어, 이번 논의가 제때 이뤄진 것 같다"며 "오늘 논의된 내용을 양형위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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