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만드는 세계적 작가' 서도호 서울 상륙…22m 무지갯빛 ‘둥지’ 펼쳤다

기사등록 2026/08/26 10:30:00 최종수정 2026/08/26 10:52:24

국립현대미술관 27일 서울관서 개막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500여 점 전시

배우 박보검 전시 오디오가이드 참여

〈둥지_들〉, 2024, 폴리에스터 õ, 스테인리스 스틸, 410.1×2,148.7×375.4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서도호 사진_ 전택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서울과 뉴욕, 런던, 베를린의 집들이 무지갯빛 천으로 이어졌다. 길이 22m. 벽도 문도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다.

‘집 만드는 작가’ 서도호(64)가 서울에 상륙했다.

세계를 떠돌며 자신이 살았던 집과 기억을 투명한 천으로 옮겨온 서도호의 30여 년 예술세계를 집약한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펼쳐진다.

27일부터 내년 2월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대학 시절 초기작부터 대표작, 2026년 신작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500여 점이 나왔다.

서도호  2025  Photography by Gautier Deblonde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에서 성장한 서도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 집과 이동,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해왔다. 특히 실제 건축 공간을 투명한 천으로 재현하는 작업으로 장소와 기억, 거주와 이동의 문제를 시각화하며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 현대 수묵화의 거장 서세옥(1929~2020)의 아들인 서도호는 서울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예일대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2017년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쫓아오는 집〉, 2019, STPI 수제 종이에 실, 131.5 × 167 cm, 작가, STPI,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서도호 *재판매 및 DB 금지


〈러빙러빙_서울 집〉 2013-2022, 닥지에 흑연, 스테인리스 철사, LED 조명, 534x866x802.5cm. 시드니 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22.© 서도호 *재판매 및 DB 금지


◆미공개 초기작부터…서도호의 ‘씨앗’을 꺼내다
전시는 서울관 3·4·5전시실과 공용공간, MMCA스튜디오에 걸쳐 펼쳐진다. 서로 다른 시기와 매체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나열하기보다 연결하고 교차시켜 서도호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됐는지를 보여준다.

전시는 전시장 밖 복도에서 시작한다.

유년기 드로잉과 조각, 대학 졸업작품과 미국 유학 전 설치 작업 등을 모은 대형 구조물 ‘시드 뱅크(Seed Bank)’다. 어린 시절 한옥 마당의 나무를 깎아 만든 해양동물 조각부터 학창 시절의 다양한 실험까지 처음 공개되는 작업들이 포함됐다.

집과 이동, 기억과 관계라는 서도호의 대표적인 화두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예술적 저장고다.

3전시실 입구에는 작가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재현한 '작은 문'(2017)이 놓였다. 이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을 포함한 드로잉 200여 점이 펼쳐진다.

4전시실에서는 대표 연작 '러빙/러빙'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작가는 자신이 떠나왔거나 사라질 장소에 한지를 밀착시킨 뒤 흑연과 색연필로 표면을 문질러 흔적을 기록한다. ‘문지르다(rubbing)’와 ‘사랑하다(loving)’의 발음적 유사성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성북동 한옥을 담은 '러빙/러빙: 서울 집'이 개인과 가족의 기억을 기록한다면 '러빙/러빙: 광주극장 사택'은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로 범위를 넓힌다.

〈완벽한 집_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2024, 폴리에스터 õ, 스테인리스 스틸, 455×1,237×575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서도호  *재판매 및 DB 금지


◆집은 하나가 아니다…서울·뉴욕·런던·베를린을 겹치다
5전시실에는 서도호의 대표작과 장기 프로젝트가 집결한다.

최근 천 작업인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은 작가가 살아온 여러 집의 문손잡이와 콘센트, 스위치 등 건축 요소를 한 공간에 중첩한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이 겹쳐진 일종의 ‘건축적 자서전’이다.

1999년 시작해 현재도 진행 중인 '다리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서울과 뉴욕을 잇는 상상의 다리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건축가와 철학자, 인류학자, 엔지니어 등과 협업하며 집에 대한 질문을 환경과 공존이라는 전지구적 문제로 확장해왔다.

높이 15m 공간을 채우는 초기작 'Who Am We?'(2000)와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작 '바닥'(1997~2000)은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보여준다.

전시실 밖에는 길이 22m의 대형 설치작 '둥지/들'(2024)이 이어진다. 서울과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작가가 거주했던 공간들을 연결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작품 내부를 직접 걸으며 공간을 몸으로 경험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 번가 348 번지, NY 10011(가나자와 버전)〉, 2012, 폴리에스터 õ, 스테인리스 스틸, 아파트 690×430×245cm, 복도, 계단 1,328×179×1,175cm.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LA 카운티미술관 소장  서도호 사진전택수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를 돌던 ‘집’, 다시 몸과 가족으로
MMCA스튜디오에서는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변화가 드러난다.

서도호는 여기서 공간과 건축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장 근원적인 관계인 가족과 부성애(Fatherhood)로 돌아간다.

처음 공개하는 신작 '사랑의 기억'(2026)은 작가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추억의 사물을 담은 작품이다.

옷이 집이 되고, 집은 세계를 거쳐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서도호가 30여 년간 탐구해온 신체와 집, 기억의 관계가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다시 만난다.

서울박스에서는 오는 12월 18일부터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을 공개한다. 작품의 전체 유닛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서울에 이어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과 홍콩 M+로 순회한다.

배우 박보검이 전시 오디오가이드에 참여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서도호의 작업을 한국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그의 예술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한층 심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에르메스, 제네시스, 신한라이프, 해암문화재단, 신영증권이 후원했다. 관람료는 8000원이다.

〈516호_516호-I_516호-II〉, 1994995, 옥양목, 지퍼, 266.7 × 213.4 × 365.8 cm. 작가 제공.  서도호. 서도호가 미국 유학 시절 거주했던 공간을 1:1 비율로 천에 재현한 최초의 천 작업이다. 작가는 실제 공간의 구조와 치수를 세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맞춤옷을 만들 듯 천으로 제작함으로써 고정된 건축 공간을 이동 가능한 형태로 변환했다. 이는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신체와 관계를 맺고 이동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본 초기 실험이었다. 특히 방의 내부를 천으로 재현한 작업은 전시장에 옮겨 설치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독립된 조형물로 전환되며 공간의 안과 밖,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새롭게 드러낸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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