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통닭보다 먼저였다…400년 명성 '수원약과'를 아시나요

기사등록 2026/08/19 16:27:28 최종수정 2026/08/19 17:48:24

1442년 유밀과에서 시작…옛 문헌엔 독자 제조법도

[수원=뉴시스] 2025년 수원화성 행궁 별주에서 진행된 '혜경궁 궁중다과 체험' 프로그램의 1인 다과상.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은 당시 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 음식문화를 소개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없음. (사진=수원시 제공) 2026.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수원 하면 갈비와 통닭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400년 가까이 '전국구 명성'을 누린 원조 별미는 따로 있다. 임금이 병석에서 입맛을 되찾으려 찾을 만큼 유명했던 디저트, 수원약과다.

수원학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수원 이야기' 시리즈 7편에서 수원약과의 유래와 역사를 조명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은 인조와 수원부사 조계원의 일화다. 병으로 입맛을 잃은 인조를 위해 궁중 수라간이 수원약과를 청했으나 조계원은 조정의 정식 명령 없이는 사사로이 음식을 올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청을 매몰차게 물린 셈이지만 인조는 화를 내는 대신 친척 간의 정을 언급하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조계원의 조카딸이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였던 인연에서다. 정약용은 훗날 이 일화를 '목민심서'에 실어 공직자의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했다.

수원약과의 출발은 이보다 앞선 1442년(세종 2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사냥을 나온 양녕대군을 접대하며 수원 수령들이 상에 올린 유밀과가 원조 격이다. 유밀과는 태조 때부터 금지된 사치품이어서 사헌부가 접대에 나선 수령의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수원=뉴시스] 수원약과 제조방법이 기록돼 있는 '증보산림경제'. (사진=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제공) 2026.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던 유밀과는 이후 수원만의 독자적인 조리법을 갖추며 약과로 발전했다. 1766년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에 따르면 다른 지역 약과는 잣가루·계피가루를 겉면에 뿌리는 반면, 수원약과는 잣가루·후춧가루·계피가루·참깨를 반죽 단계부터 섞어 넣는다. 19세기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도 같은 제조법이 그대로 실렸다.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던 지리적 조건도 수원약과가 발달하는 데 한몫했다. 1596년 사간원은 수원을 손님 접대가 가장 중요한 고을로 꼽았고, 19세기 관청 문서 '화영사례'에는 손님 격에 따라 약과 크기를 특·대·중·소로 나눠 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렇게 이어지던 관아의 약과 전통은 1910년 국권 상실과 함께 끊겼다. 다만 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조가 세운 용주사가 제사 음식으로 명맥을 이었고, 1925년 '해동죽지'에도 용주사 약과를 기린 기록이 전해진다.

홍현영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원은 "각 지역이 브랜드와 연결될 수 있는 대중적 먹거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수원은 400년이라는 역사성을 가진 수원약과가 있다"며 "약과 본연의 맛에 역사적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관광 상품으로 접근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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