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만 아시나요?…100년 전 경성 '잇템'은 해주항아리

기사등록 2026/08/16 12:00:00 최종수정 2026/08/16 12:08:24

분원 해체 뒤 황해도 해주 일대서 민수용 제작

백자 제작기술에 옹기 쓰임 더해…경성서 유행

모란·물고기·누각 자유롭게 그린 민화적 문양

[서울=뉴시스] 해주항아리 (사진=국립해양박물관 누리집 갈무리) 2026.08.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보름달을 닮은 넉넉한 몸체와 은은한 유백색의 달항아리가 오늘날 사랑받는 '조선의 명품'이라면, 100여 년 전 경성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항아리도 있었다.

백자의 맑은 질감에 옹기의 실용성을 갖추고, 몸통에는 모란과 물고기, 누각 등을 자유롭게 그려 넣었다. 황해도 해주 일대에서 만들어져 경성을 중심으로 유행한 '해주항아리'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제로: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에서는 해주항아리 88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4월 김의광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이 10여 년간 수집해 기증한 해주항아리 232점 가운데 일부다.

[서울=뉴시스] 해주항아리 (사진=목인박물관 목석원 누리집 갈무리) 2026.08.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백자 기술에 옹기 쓰임 더해…경성서 '유행'

해주항아리의 등장은 1883년 왕실용 자기를 생산하던 분원의 해체와 맞물린다. 분원이 문을 닫은 뒤 사기장들이 황해도 해주 일대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민간에 판매할 생활용 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원에서 익힌 백자와 청화백자의 제작 기술에 당시 생활용기로 널리 쓰이던 옹기의 형태와 쓰임을 결합했다. 관청을 위한 자기가 아닌 민간에서 실제 사용할 물건을 만들면서 해주항아리만의 모습이 갖춰진 것이다.

그렇다고 흔한 살림살이는 아니었다.

백토를 높은 온도에서 구워 만든 사기인 만큼 일반 옹기보다는 비쌌다. 처음에는 구매력이 있는 경성의 양반가 등을 중심으로 팔리다가 유행하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마다 쓰임이 달라지면서 크기와 형태도 다양해졌다.

김의광 관장은 "1850년대부터 6·25 전까지 100여 년간 좀 더 좋은 옹기를 써보자며 만든 것으로, 요새 말하면 명품"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옹기가 장이나 곡식 등을 담아두는 생활용기였다면 해주항아리는 대청마루나 찬방 등에 놓였다. 단단하고 실용적인 옹기의 형태에 백자의 맑은 질감을 갖춰 생활용기이면서 장식품 역할도 했다.

◆모란 피고 쏘가리 헤엄치고…항아리에 담긴 민화

해주항아리의 또 다른 매력은 몸통에 그려진 그림이다.

대개 50~60㎝ 크기로, 어깨에는 그물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목단문(모란꽃 무늬)과 어문(물고기 무늬), 누각 등을 그렸다. 관요 백자처럼 정제된 표현보다는 민화처럼 자유롭게 생략하고 과장한 그림에서 민간 장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림에는 당시 사람들의 바람도 담겼다.

김 관장은 "목단이나 집(누각), 물고기 중에서도 기존에 많이 그리던 잉어 대신 대궐과 같은 발음이 나는 쏘가리 등을 민화적으로 생략과 과장을 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듯하고 완벽한 것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불길이 고르게 닿지 않아 원하던 색이 나오지 않거나 조금 일그러진 항아리에서도 민간 도자 특유의 자연스러운 맛을 찾을 수 있다.

'해주항아리'라는 이름은 제작 당시부터 쓰인 명칭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쓰임이나 문양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가 훗날 해주 일대에서 생산된 특징적인 항아리를 묶어 해주항아리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해주항아리가 보인다. 2026.08.15. nowo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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