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보덕사·해인사 국일암 해우소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예고
입측오주부터 자연 순환까지…배설을 수행으로 승화한 불교 문화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貪瞋痴)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입측진언入厠眞言' 중)
똥오줌을 버리는 곳에서 번뇌도 함께 버린다. 사찰의 해우소는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라 몸속 배설물과 함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까지 내려놓는 수행의 공간이었다.
국가유산청이 최근 순천 선암사 측간, 영월 보덕사 해우소,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 등 3곳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하면서, 사찰 해우소에 담긴 수행과 생활문화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설도 수행이었다
'해우소'는 근심과 걱정을 푼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이후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다솔사의 '해우정'이나 동학사의 '해우실'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있어 명칭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그 이전에는 '측간', '뒤깐', 중국 불교에서 유래한 '정랑' 등이 사용됐다.
불교에서 해우소는 몸속 배설물만 버리는 곳이 아니다. 몸을 비우듯 마음속 번뇌도 함께 비우는 공간이다. 스님들은 해우소에 들어갈 때부터 씻고 나올 때까지 '입측오주'라는 다섯 가지 진언을 외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일상의 생리 현상조차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전통 선종 사찰에서는 해우소를 법당이나 승방과 함께 반드시 갖춰야 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여겼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음식→똥→거름→음식'
전통 해우소는 건물 자체에도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한 누각 형태로 지어 통풍이 잘되도록 했고, 낙엽과 왕겨, 톱밥 등을 뿌려 배설물이 자연 발효되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는 사찰 텃밭의 거름이 되고, 그곳에서 자란 채소는 다시 스님들의 공양이 된다. 음식이 배설물을 거쳐 다시 음식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다. 음식→똥→거름→음식'의 고리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100년 넘게 살아남은 해우소
현대사회 들어 급격한 서구화, 관리의 번거로움, 내방객 증가, 농경사회 변화 등으로 전통 해우소는 수세식 화장실로 대체되며 자취를 감춰왔다. 현재 원형을 유지한 사찰 해우소는 전국에 약 20여 곳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유산청이 100년 넘게 건립 당시의 위치와 원형을 유지하며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사찰 해우소 3곳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된 선암사 측간과 보덕사·해인사 국일암 해우소는 모두 100년 넘게 원형을 유지하면서 지금도 실제 사용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지정이 불전이나 탑 같은 신앙 공간을 넘어 승려들의 수행과 일상이 담긴 생활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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