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무덤 팠다"…AI 습격에 무너진 190만 필리핀 외주 시장

기사등록 2026/08/06 02:01:00
[서울=뉴시스]글로벌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생성형 AI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필리핀 내 단순 사무 및 콜센터 업무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사진 유토이미지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인공지능(AI)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웠던 필리핀의 외주 서비스 시장이 심각한 고용 위기에 직면했다.

5일 영국 BBC 방송은 AI 시스템의 전면 도입으로 필리핀의 핵심 동력인 정보기술 및 업무위탁(BPO) 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필리핀은 높은 영어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인도와 더불어 세계적인 외주 서비스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액센츄어와 컨센트릭스, 텔레퍼포먼스 등 대형 다국적 기업들이 필리핀 현지에 대규모 사업장을 조성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현재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필리핀 노동자는 약 190만명이다. 연간 매출은 400억달러(약 54조7000억원)로 필리핀 전체 경제 생산의 1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먹거리다. 필리핀 정부는 그동안 세금 감면과 기반 시설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해외 기업 유치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저임금 단순 노동에 의존해 온 산업 구조는 AI 기술의 등장 앞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생성형 AI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필리핀 내 단순 사무 및 콜센터 업무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기술 발전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던 노동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AI를 스스로 훈련시킨 꼴이 됐다.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성장해 온 개발도상국의 고용 시장이 첨단 기술의 습격 앞에 무력하게 내몰리고 있다.

현지에서 15년 동안 콘텐츠 작성 업무를 해온 한 계약직 노동자는 "마치 내 무덤을 스스로 팠다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AI 전환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라 단순 위탁 업무에 의존해 온 개발도상국 경제 전체가 대대적인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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