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홀 연장하려 간 농장…"화장실 못 가 일부는 기저귀까지 구했다"

기사등록 2026/08/04 16:50:53 최종수정 2026/08/04 17:00:24

워홀 노동자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20호주달러”

급여명세서 없어 ABC도 실제 임금은 독립 검증 못 해

숙소·교통까지 인력업체에 묶여 부당대우에도 이탈 어려워

[시드니=AP/뉴시스]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 대신 호주에서 양고기 수입을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호주 시드니 인근 목장의 모습. 2025.05.02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호주 농장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화장실을 다녀올 휴식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해, 일부는 기저귀까지 마련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4일 탐사보도 프로그램 ‘포 코너스’가 8개월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이주노동자 착취 실태를 보도했다. 취재진은 농장과 노동자 숙소를 현장 취재하고 임금 자료와 정부 문서도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연장하려 호주 농장에서 일한 한 이주노동자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도 20호주달러(약 2만원)만 받는 날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올 휴식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아 일부 노동자가 기저귀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호주 원예업에 종사하는 성인 초급 노동자의 법정 최저 시급은 지난 7월1일부터 전일제·시간제 노동자에게 25.74호주달러(약 2만5700원), 근무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임시직(캐주얼) 노동자에게 32.18호주달러(약 3만2200원)로 적용된다. 다만 취재에 응한 노동자들은 급여명세서를 받지 못해 ABC도 이들이 제시한 임금 액수를 독립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 증언을 한 진 리씨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연장 요건을 채우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주 코프스하버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했다. 리씨에 따르면 인력공급업체는 임금에서 매주 숙박비 150호주달러와 매일 교통비 10호주달러를 공제했다. 숙소에는 18명이 몰려 살았다. 바퀴벌레가 돌아다녔고 문과 창문, 에어컨도 고장 나 있었다고 리씨는 말했다.

ABC가 리씨를 모집한 업체 ECW 파밍을 추적했지만, 등록 주소지에는 배낭여행자 숙소가 있었고 숙소 측은 ECW 파밍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ABC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문서에 따르면 호주의 노동관계 감독기관인 공정근로옴부즈만은 노동자 제보를 받고 2024년 이 업체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자를 확인하지 못해 2025년 5월 조사를 중단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저임금 증언이 나왔다. 파푸아뉴기니 출신 게르숌 아이작은 하루 최대 12시간 동안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고 때로는 시급 7호주달러(약 7000원)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른 날에도 나무에 올라 오렌지를 따야 했고, 아프거나 다쳐 일을 쉬면 수입이 끊겼다고 했다.

공정근로옴부즈만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노동법 위반 위험이 큰 지역을 선정해 512개 사업체를 불시점검한 결과, 법 위반 사업체 비율은 빅토리아주 모닝턴반도·야라밸리에서 83%, 뉴사우스웨일스주 리베리나에서 72%, 코프스하버·그래프턴에서 61%로 나타났다. 이는 법 위반 위험이 큰 곳을 겨냥한 집중점검 결과이므로 호주 농장 전체의 위반률로 볼 수는 없다. 벌금통지서 166건 가운데 91%는 인력공급업체를 대상으로 발부됐다. 당국의 조치로 노동자 464명이 체불임금 총 38만4168호주달러를 돌려받았다.

호주 농가들은 수확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일손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업체는 노동자 모집과 임금 지급뿐 아니라 교통편과 숙소까지 맡는다. 일자리와 주거를 한 업체에 의존하게 된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어렵다.

인력공급업체에 대한 의존에 더해 ‘태평양·호주 노동이동 제도’(PALM)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은 비자 때문에 고용주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 PALM은 태평양 도서국 노동자를 호주의 승인된 고용주와 연결하는 제도다. 노동자가 승인 고용주를 떠나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다른 승인 고용주로 옮기려면 정부에 고충을 신고하고 재배치 심사를 받아야 하며, 재배치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PALM 참여 노동자가 고용주를 바꾸기는 어려운 반면,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인력공급업체가 허가 없이 영업할 수 있다. 제임스 코케인 뉴사우스웨일스주 반노예제위원은 진입장벽이 없어 부도덕한 사업자가 몰려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케인 위원은 일부 사례는 강제노동이나 채무노예 등 현대판 노예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는 법원의 확정 판단은 아니다.

공정근로옴부즈만과 호주 국세청, 호주 국경수비대는 지난 7월 마지막 주 리베리나 지역 농장 15곳 이상을 방문해 임금 지급 실태와 세금·이민법 위반 가능성을 점검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는 인력공급업체 행동규범을 마련하고 허가제 도입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는 국내 농장 착취 문제와 별도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통상 압박도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일부 예외를 제외한 호주산 제품에 1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관세가 부당하며 호주는 강제노동에 대응할 강력한 법제를 갖추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장 인력공급업체 규제와 별개로 대기업 공급망을 다루는 연방법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호주의 2018년 현대판 노예방지법은 연 매출 1억호주달러를 넘는 기업이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대판 노예제 위험과 대응 조치를 매년 보고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기업의 인권 실사를 의무화하지 않고 보고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도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2023년 호주 정부에 제출된 독립 검토보고서는 보고 의무 위반에 민사제재를 가하고 인권 실사를 의무화하라고 권고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 7월 보고 의무 위반에 민사제재를 부과하고, 공급망의 현대판 노예제를 막지 못한 대기업을 처벌하는 새 형사조항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안은 아직 협의 중이다. 앞서 저임금 피해를 증언한 아이작은 ABC에 “우리는 살아남으려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