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100만부 판매…200번째 책은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
한길사 대표 "독서율 급락…종이책 읽고 사유하는 운동 절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어느새 3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고전으로부터 다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기획이 200권 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30년간 인문고전 총서 '한길그레이트북스' 200권을 출간한 한길사가 AI 시대 '사유의 힘'을 다시 화두로 던졌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4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한길그레이트북스' 200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총서가 걸어온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한길사는 1996년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을 제1권으로 출간한 뒤 30년 만에 제200권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를 펴냈다. 그동안 발행한 책은 누적 100만부에 이른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총서의 역자로 참여한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명예교수, 서인범 동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박종일 번역가와 독자 대표 최명용씨가 참석해 고전 출판의 의미와 인문학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200권이라는 결실은 한 출판사의 역량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적 역량이 집약된 결과"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AI 확산과 독서율 하락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마치 책을 읽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고, 독서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AI 시대를 창조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다시 읽고 밑줄을 그으며 사유하는 운동이 절실합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가 찾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비롯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주요 저작을 번역한 김선욱 교수도 '사유의 외주화'를 경계했다.
김 교수는 "질문마저 AI 프롬프트에 외주를 주는 시대가 됐다"며 "삶의 의미나 존재 이유처럼 쉽게 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견디는 과정이 인문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유가 전제돼야 과학기술도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수년에 걸쳐 원전을 번역하고 다듬어 온 역자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봉건사회', '유랑시인' 등을 번역한 한정숙 교수는 1982년 한길사와 인연을 맺고 프랑스어 원전과 씨름하며 완역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한 교수는 "시장성이 높지 않은 우크라이나 국민시인의 시집까지 기꺼이 출판해 준 한길사의 뚝심 덕분에 역사 연구자로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최부의 중국 견문록 '표해록'을 번역한 서인범 교수는 완역을 위해 3년6개월 동안 국내외 서고를 뒤지고 200여 개의 주석을 달았던 과정을 떠올렸다.
서 교수는 "선인의 충효 정신과 해양 리더십이 담긴 이 책이 한길그레이트북스에 포함되면서 비로소 많은 독자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제200권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를 옮긴 박종일 번역가는 상업성이 낮은 인문고전을 30년간 꾸준히 출간해 온 한길사의 작업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박 번역가는 "사람에게 인격이 있고 나라에 국격이 있듯, 출판물에도 그에 걸맞은 품격이 있다"며 "인문고전 200권을 펴낸 출판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출판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제200권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을 변화시킨 '인류세'의 기후·생태 위기를 자본주의의 무한 축적 논리와 연결해 분석한 책이다.
첫 권 '관념의 모험'이 인간 사유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200번째 책은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박 번역가는 "지구 시스템을 위기에 몰아넣은 원인을 그동안 인간의 탐욕이라는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표현으로 설명해 왔다"며 "이 책은 그 원인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의 원인을 막연한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독자 대표 최명용씨는 "1996년 첫 권 '관념의 모험'에서 시작된 사유의 여정이 200권까지 이어진 것은 감동 그 자체"라며 "혼란에 빠진 AI 시대에 한길그레이트북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온전한 사유의 자유를 선물한다"고 말했다.
한길사는 200권 출간에 이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4', 독일 중세 궁정서사시 '파르치팔', 한나 아렌트의 유고집 '정치의 약속' 등을 잇달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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