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보다 많은 돈 줘도 안 온다…러, 길에서 붙잡아 입대 서명

기사등록 2026/08/04 11:23:43 최종수정 2026/08/04 12:04:24

신분 확인 구실로 남성 데려가 계약서명 압박

펜자서 폭행·체포 위협 증언 잇따라

현지 당국 "병역 기피 단속…전선 투입 아냐"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23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군 징집병들이 할당 군부대로 향하기 전 열린 송별식에 참석해 도열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봄 징집 기간 18~27세 사이 14만7000명을 징집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징집병들은 1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 2023.05.24.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러시아 지방도시에서 경찰과 군 모병 관계자들이 남성을 거리에서 붙잡아 폭행·협박한 뒤 우크라이나전 참전을 위한 계약입대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압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일부 지역에는 모병 대상자를 데려오면 1명당 10만루블(약 180만원)을 주는 소개금 제도까지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변호사와 인권활동가, 목격자 등을 인용해 러시아 소도시에서 신원이나 개인정보 확인을 구실로 남성을 구금한 뒤 모병 사무소로 데려가는 사례를 보도했다. 일부 남성은 계약서 서명을 거부하자 구타당하거나 체포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고 취재원들은 주장했다.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전에 투입할 병력을 공식적으로 지원자의 자발적인 계약입대 방식으로 충원해왔다. 우크라이나의 강제징집 논란을 비판하면서 자국의 병력 충원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펜자주에서는 모병 대상자를 데려오면 10만루블을 지급한다는 광고가 주거용 건물에 붙었고, 타타르스탄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소개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모스크바 남동쪽 펜자주에서는 지난 5월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남성이 모병 사무소에서 발견됐다. 지역 주민 블라디슬라프 레오니도프는 이 남성이 개인정보 확인을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갔다가 모병 담당자 2명에게 끌려가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레오니도프는 피해 남성의 지인이 신체검사 절차가 시작되기 직전 개입해 그를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펜자 모병소 밖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군용 승합차 안에 타고 있는 민간복 차림의 남성들과 울먹이며 차량을 막아선 여성들의 모습이 담겼다. 한 여성은 남성들이 구타당하고 계약서 서명을 강요받았다며 항의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23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군 징집병 송별식이 열려  한 징집병이 할당 부대로 떠나기 전 송별 나온 애인과 입맞춤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봄 징집 기간 18~27세 사이 14만7000명을 징집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징집병들은 1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 2023.05.24.
안드레이 수르코프 펜자 모병사무소장은 영상 속 남성들이 병역 기피 단속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펜자주 내무부도 단속 과정에서 붙잡힌 남성들을 전선으로 보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내무부는 이 영상을 강제모병 사례로 유포하는 것은 허위정보에 해당한다며 유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펜자주의 강압 모집 의혹을 다큐멘터리로 다룬 블로거 스타니슬라프 모로조프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모로조프는 자신이 접촉한 수십 가족 가운데 상당수로부터 경찰이 마약 혐의를 꾸미거나 그 자리에서 체포하겠다고 협박해 가족 구성원이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강압 모집 의혹은 러시아군이 자발적 계약입대만으로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불거졌다. 러시아 당국은 계약입대자에게 현지 노동자의 1년치 연봉을 웃도는 일시금에 별도 급여까지 제시해왔다. 하지만 군 내부 가혹행위 증언이 나오고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이 거세져 러시아군 피해가 커지면서 모집 목표를 채우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러시아군의 월평균 전사·부상·실종자 수를 3만~3만4000명, 월평균 신규 모집 인원을 약 2만7000명으로 추산했다. CSIS는 러시아군이 지난 4~5월 새로 점령한 영토보다 더 많은 땅을 잃어 러시아군이 차지한 영토가 두 달 동안 약 400㎢ 줄었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AP/뉴시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비공개 장소에 있는 러시아군 통합 그룹 지휘소 가운데 한 곳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이 제공한 사진이다. 2026.7.4.
추가 동원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2022년 9월 부분 동원의 전례가 있다. 당시 러시아는 병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예비군 약 30만명을 불러들이는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현재는 월간 인명 손실이 신규 모집 인원을 웃돌고 강압 모집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러시아 정치권과 군사 분석가들 사이에서 이런 움직임이 국가가 예비군을 다시 불러들이는 추가 동원의 전조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당국자들은 강압적인 모집으로 전선 병력이 일부 늘었지만 전선에서 대규모 돌파를 이뤄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WSJ에 말했다. 이들은 크렘린궁이 추가 동원을 저울질하고 있으며, 동원령을 내리더라도 9월 18~20일 치러지는 국가두마 선거 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모스크바의 국방 싱크탱크인 전략기술분석센터의 루슬란 푸호프 소장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역을 장악한다는 목표를 고수하면 추가 동원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WSJ은 새로 동원될 이들이 2022년 동원자들보다 군 경험이 적고 참전 의지도 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추가 동원의 군사적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징집 기피와 국내 정치적 반발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