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AI 학습시킨다며 파쇄기에 갈아넣어"…'현대판 책 불태우기' 논란

기사등록 2026/08/01 10:08:33 최종수정 2026/08/01 10:12:25

스캔 뒤 원본 통째로 파쇄… '저작권법 허점' 합법적 증거 인멸 논란

"수백 년 전쟁·화재 견딘 고서도 갈아넣어"…머스크 "수동 스캔하라" 지적

[서울=뉴시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 이후 미국 대학에서 A학점 비중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유토이미지)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강건우 인턴기자 = 인공지능(AI) 기업들이 학습 데이터 확보를 위해 전 세계의 고서와 중고책을 사들인 뒤 스캔하고, 원본은 물리적으로 파쇄하는 충격적 실태가 드러났다. 저작권법의 허점을 악용해 증거를 인멸하듯 책을 부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 AI 기업들이 전쟁과 화재를 견뎌낸 희귀본까지 갈아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전 세계 수백 명의 고서적상들이 3000종이 넘는 책을 한 번에 사겠다는 대량 구매 요청 이메일을 받았는데 이들이 수배한 책은 고속 스캐닝 기계에 투입돼 책등이 잘리고 원본은 찢기거나 종이죽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사실은 IT 매체 404미디어가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서비스에선 한 번에 최대 100만 권을 주문할 수 있도록 했고, 전 세계에 5권밖에 남지 않은 희귀본도 파쇄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책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정확한 이유는 '저작권법의 허점' 때문이다. AI 기업들은 출판사에 로열티를 지불하기 싫어 중고 서점에서 단종본이나 고서를 싼값에 싹쓸이한다. 이후 유압식 절단기로 책등을 잘라내 낱장으로 만든 뒤 고속 스캐너로 데이터를 추출한다.

핵심은 스캔이 끝난 원본을 그대로 파쇄기에 돌려버린다는 점이다.

지난달 공개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디지털로 스캔한 뒤 원본을 완전히 파괴하면 이를 복제가 아닌 물리적 책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형'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소송의 증거가 될 원본을 아예 없애버리면 합법적으로 AI 학습이 가능해지는 법적 허점을 노린 것이다.

저작권법의 사각지대도 문제로 지적된다. 저작권법은 수백만 권 찍어낸 '해리 포터'와 5권만 남은 희귀본을 똑같이 '사본'으로 취급한다.

코넬대 제임스 그리멜만 디지털 정보법 교수는 "저작권법은 원본이나 물리적 유물에 관심이 없다"고 짚었다. 스페인의 한 고서적상은 "희귀본의 마지막 사본을 가져갈 때 위험이 특히 크다"며 "AI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원본을 파괴하지 말고 제대로 디지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리꾼들의 분노도 거세다. 한 엑스(X) 사용자는 "전쟁과 화재,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책들이 마케팅 이메일 잘 쓰는 AI 만들겠다며 잘려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우려를 표하며 "스페이스X AI 팀에 희귀본은 도서관에 보존하고, 등을 잘라내지 말고 수동으로 스캔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AI 기업 팩토리 AI의 마탄 그린버그 CEO는 "친밀한 인간 객체를 기계로 파괴하는 건 반인간주의적 성향"이라며 "역사는 이유가 뭐든 책을 부수는 자들에게 관대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고서적상 피터 드 브리스 씨는 "이는 일종의 야만주의이자 책 불태우기와 같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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