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진 지난달 30일 경남 함안군 칠원읍 김씨공방(아라대장간).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과 달궈진 쇠의 열기가 뒤섞인 작업장은 체감온도 45도를 훌쩍 넘는 찜통이었다. 오히려 폭염이 이어지는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장장이 김정식 장인은 화덕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쇠를 집게로 꺼내 모루 위에 올려놓고 힘껏 망치를 내리쳤다.
'탕! 탕! 탕!' 망치가 달궈진 쇠를 때릴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만 서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환경이지만 김 장인의 손놀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칼 한 자루는 단조와 열처리, 연마 등 수십 번의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쇠를 달구고 두드리기를 반복한 뒤 다시 불에 넣어 열처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날을 세우는 연마 작업까지 마쳐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뤄지는 만큼 하루 동안 완성할 수 있는 칼은 4~6자루 정도다. 폭염이라고 해서 작업량을 줄일 수도 없다. 주문을 맞추기 위해서는 화덕 앞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김 장인은 2대째 대장장이다.
대장장이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50여 년 동안 쇠를 두드려 왔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대장간으로 향해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풀무를 돌리고 망치를 건네던 소년은 어느새 평생 쇠를 벗 삼아 살아가는 장인이 됐다.
젊은 시절 잠시 고향을 떠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쇠를 달구는 불과 망치질 소리는 그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상이었다.
김 장인이 만드는 칼은 용도와 제작 방식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일반 칼은 10여만 원 선에서 시작하지만 여러 종류의 강하고 부드러운 쇠를 접합하고 오랜 시간 단조를 반복한 작품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그는 "좋은 칼은 어떤 쇠를 어떻게 붙이고, 얼마나 정교하게 단조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며 "같은 칼이라도 손이 더 많이 갈수록 품질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김씨공방의 칼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식당 주방에서 사용하는 칼을 찾는 요리사와 생선 손질용 칼이 필요한 수산물 상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주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인터넷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예전보다 판로도 한층 넓어졌다.
그는 "바쁠 때는 정신없이 일하지만 주문이 뜸한 시기도 있다"며 "돈을 많이 벌기보다 대장간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망치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대장간 한편에는 김 장인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 50㎏이 넘는 묵직한 쇠덩이인 '모루'다. 달궈진 쇠를 올려놓고 두드리는 대장간의 핵심 도구다. 이 모루는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던 것이다.
김 장인은 "아버지는 이 모루와 망치, 집게 등 연장을 등에 지고 전국 장터를 다니며 대장간 일을 하셨다"며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모루는 곳곳이 닳고 긁혔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 장인에게는 작업 도구이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유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전통 대장간을 잇겠다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힘든 작업 환경과 오랜 수련 과정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는 반드시 이 기술을 이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김 장인은 "폭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쇠가 좋은 칼이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힘든 줄도 잊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대장간의 불을 계속 지킬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37도의 폭염 속에서도 화덕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여름보다 더 뜨거운 대장간에서 김정식 장인은 오늘도 묵묵히 망치를 들어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망치질은 단순히 칼을 만드는 소리가 아니라,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장인의 시간을 이어가는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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