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정영 기자 = 비공개로 진행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실 앞에 쪼그려 앉아 닫힌 문에 귀를 대어 보면 많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수정안이 여러 차례 나오고 회의는 마무리된다.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기자들이 통보받는 것은 노사 간의 '흥정'으로 나온 요구액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 노사는 1680원 차이가 났던 요구액을 30원까지 좁혔지만 합의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13번의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공동의 최종안을 위해 노력했지만, 피로감만 쌓였을 뿐 노사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 대비 3.7% 인상된 1만700원으로 결정된 후 노동계는 "최근 물가 수준과 체감 생계비 상승을 고려하면 3.7% 인상은 사실상 동결에 가까운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경영계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운 경영 현실과 한계에 이른 지불여력을 고려하면 동결돼야 했다"며 불만을 표했다.
최저임금 심의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공개되는 모두발언 후 기자들은 회의실에서 빠진다. 모두발언을 가만히 듣다 보면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저번 회의 때 말했던 거 아닌가." 그리고 나서 비공개 회의가 시작되면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같은 사람의 목소리만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정회를 했을 때 밖에 잠깐 나오는 위원들에게 심의 과정을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 결정된 게 없고 합의하고 있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어떤 내용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여러 차례 수정안이 나오고 회의는 종료된다. 한 근로자위원은 "매번 같은 논의만 반복되고, 통계자료는 수치만 바꿔서 들고 나와서 (반대쪽의 입장에 있는) 위원들은 이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수정안은 심의 기한이 다 지나서야 한꺼번에 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또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기 전에는 격차를 좁히는 속도는 느리다. 비공개 회의에서 유의미한 진전 없이 노사가 수정안으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공익위원들이 관여하면 그제서야 심의가 속도를 내는 것이다.
요구안이 좁혀지지 않으면 표결이 진행된다. 표결에서 근로자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9명은 당연히 자신들의 요구안에 투표를 하게 되고, 결국 공익위원들이 내년 한 해 동안 적용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가 된다.
이때부터는 노사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고, 공익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수천만 근로자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다. 올해 심의는 105일이 걸렸는데, 표결은 10분이었다. 100일이 넘게 '깜깜이' 심의를 했지만 노사 합의가 안 돼 공익위원들의 손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넘어간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 의결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최대 297만8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근로자 2239만여명 중 13.3%나 되는 숫자다. 최저임금이 누군가에게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희망이고, 또다른 이들에겐 사업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보내는 지름길이 된다. 이제는 40년 묵은 최저임금 '깜깜이' 심의를 그만하고 근로자들에게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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