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성장률 전망 2.0→3.0% 상향
GDP 디플레이터 9%…소비자물가도 2.6%
취업자 증가 전망은 16만→15만명으로 낮춰
전문가 "외부여건 의존…성장 과실 확산 한계"
적극재정, 물가 자극 우려…재정·통화 공조 필요
잠재성장률 3% "도전적"…노동 등 구조개혁 관건
[세종=뉴시스]여동준 임하은 박광온 기자 =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끌어올렸다. 전망이 현실화하면 2021년 이후 5년 만에 3%대 성장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 성장률 상향을 이끈 것은 반도체 수출과 수출가격 급등이다. 소비자물가 전망은 높아졌고 취업자 증가폭은 오히려 낮아졌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수도권에 성장의 온기가 집중되면서 수출과 내수, 산업, 지역,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 'K자형 성장'이 심해질 가능성도 남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14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3.0%로 1.0%포인트(p) 상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5%,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6%보다 높은 전망이다.
정부가 성장률을 대폭 높인 가장 큰 근거는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호황이다. 올해 통관수출 증가율 전망은 기존 4.2%에서 40.0%로 뛰었다. 1분기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38.4%, 2분기에는 57.5% 증가한 최근 실적을 반영했다.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은 "가장 큰 변화는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수출 증대"라며 "6월 실적까지 확인한 결과 수출이 굉장히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동전쟁의 긴장이 다소 완화됐고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를 앞당기는 움직임도 성장률 전망에 반영됐다. 정부는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5.0%로 내다봤다.
전문가들도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 3% 성장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봤다. 다만 성장률 달성 여부가 정부 정책보다 반도체 경기와 국제유가, 중동 정세 등 외부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률 3%가 완전히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지만, 달성하더라도 정부 정책의 효과라기보다 반도체 호황과 중동 정세 안정 등 외부 여건이 좋아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지속된다면 3% 성장이 가능하다면서도 최근의 성장세는 정부의 특별한 기여보다 글로벌 AI 전환과 미·중 첨단산업 경쟁,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1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보다 3.8%를 기록했고 중동전쟁도 수습 국면에 들어간 점을 고려하면 2.8% 정도는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만큼 3% 전망은 다소 높다고 평가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부의 3% 전망을 "상당히 높은 목표"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수출 성장세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산시장 변동성, 물가 상승, 이상기후, 내수 부진 등 여러 불확실성이 있어 달성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성장률 12.3%의 이면…디플레이터 9%·물가 2.6%
실질성장률보다 더 큰 변화는 경상성장률에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경상 GDP 성장률 전망치를 4.9%에서 12.3%로 높였다. 1996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에 경제 전반의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 GDP 디플레이터를 반영한 명목 성장률이다. 정부는 실질성장률 전망을 2.0%에서 3.0%로 높이는 동시에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도 2.9%에서 9.0%로 상향했다.
GDP 디플레이터가 급등한 직접적인 배경은 반도체 수출가격이다. 반도체 수출물가는 지난 1월 전년 동월보다 73.4% 오른 뒤 5월에는 상승률이 163.3%까지 높아졌다. 수출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개선되면 기업소득과 국민총소득, 세수 여건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GDP 디플레이터 9%가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도 9% 올랐다는 뜻은 아니다. GDP 디플레이터에는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제품의 가격이 포함되는 반면 수입품 가격은 직접 포함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는 구성과 범위가 다르다.
그럼에도 수출가격과 생산비 상승이 다른 가격으로 번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기존 2.1%에서 2.6%로 0.5%p 높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과 2월 각각 2.0%였지만 4월 2.6%, 5월 3.1%, 6월 3.2%로 확대됐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5월과 6월 각각 2.5%를 기록했다.
정부는 하반기 국제유가가 내려가면서 물가 상승세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중동전쟁 협상과 이상기후에 따른 에너지·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황 교수는 GDP 디플레이터가 9%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운용을 계속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양호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하반기에도 적극적인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하는 추가 세수를 청년·차세대 성장·지방·교육 분야에 투입할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할 계획이다.
황 교수는 "GDP 디플레이터가 9%까지 뛰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물가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는 초과세수를 추가 지출에 활용하기보다 재정수지를 개선하고 국가채무 증가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
명목 GDP 증가로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6%에서 47.0%로 낮아지는 것도 재정건전성의 구조적 개선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실질성장뿐 아니라 물가 상승으로 분모인 명목 GDP가 커진 효과가 함께 반영됐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려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이 더 들어온다는 이유로 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재정정책도 통화정책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장률은 3% 상향·취업자는 15만명 하향…반도체 성장의 한계
성장률 상향이 고용 전망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도 이번 전망의 특징이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폭 전망을 기존 16만명에서 15만명으로 낮췄다.
취업자는 지난 4월 전년 동월보다 7만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고 5월에는 4만명 감소했다. 올해 1~5월 월평균으로 서비스업 취업자는 26만3000명 늘었지만 제조업은 5만5000명, 건설업은 2만5000명 감소했다.
정부는 중동전쟁의 영향과 건설투자 회복 지연에 더해 성장의 중심이 고용 창출 효과가 낮은 반도체라는 점을 원인으로 들었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성장률 상승이 주로 반도체 분야에서 나오는데 반도체는 취업유발계수가 높지 않아 일자리 창출에는 제한이 있다"며 "최근 고용 감소와 생산연령인구 축소까지 감안해 취업자 전망을 1만명 낮췄다"고 설명했다.
수출액과 기업이익은 크게 늘어도 생산 과정이 자본·기술집약적인 반도체에 집중되면 고용 증가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지역과 대기업, 숙련인력에는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는 반면 건설업·자영업·중소기업과 청년층이 체감하는 경기는 상대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정부는 2030년까지 첨단산업 청년 전문인력 20만명 이상을 양성하고 민간·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20만개 이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중장기 누적 목표다. 당장 올해 취업자 증가세 둔화를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연도별 일자리 창출 경로는 제시되지 않았다.
강성진 교수는 "K자형 경제구조와 기술집약적 반도체 중심 성장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고용 대책은 교육훈련 정도에 그쳐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자영업자와 중소·중견기업에서도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성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현재 늘어나는 일자리는 주로 60대 이상 고령층의 복지·돌봄 분야에 집중돼 있고 청년 고용과 일자리의 질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청년 일자리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야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정세은 교수는 첨단산업이 성장해도 고용이 대규모로 늘어나기는 어렵고, AI 전환의 과실이 소수의 최고숙련 기술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AI 전환으로 주니어 직업이 사라지고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이 문제"라며 "노인 대상 공공일자리를 넘어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별도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인정한 K자형 성장 가능성…구조개혁은 여전히 과제
정부도 반도체 중심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성장전략에는 수출과 내수, IT와 비IT,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편중이 심해지면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할 수 있다는 진단이 담겼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 일자리와 자산·주거 지원, 중소기업 성장 사다리, 소상공인 재기 지원, 지역 성장엔진 육성 등을 제시했다.
이번 전략의 성격을 놓고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부가 반도체와 AI 등 일부 산업을 직접 선정해 투자와 지원을 집중하는 국가 주도형 산업정책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과 기업을 선정해 자금을 배분하면 시장을 왜곡하고 특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인프라와 기초연구,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장 실패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세은 교수는 이번 전략을 고도성장기의 국가 주도형 산업정책과 유사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지역균형발전과 에너지전환을 함께 추진한 점에는 의미를 부여했다.
정 교수는 "보수정부식 적극적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지역균형발전과 에너지전환을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성향도 드러난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적극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이전 정부보다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해 일정한 성과를 낼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잠재성장률 3%, 수출 세계 4강, 국민소득 5만 달러라는 '3·4·5 비전'은 지나치게 도전적이라는 평가가 공통적이다.
황 교수는 잠재성장률은 특정 정부가 2~3년 동안 일부 정책을 추진해 반등시킬 수 있는 지표가 아니라며 적어도 10년을 내다본 인구·교육·돌봄·사회안전망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도 생산연령인구가 줄고 성숙경제 진입으로 자본축적과 생산성 향상이 어려워진 만큼 잠재성장률 3% 달성은 쉽지 않다고 봤다. 다만 정년 연장을 통한 노동력 확대와 AI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생산성 향상을 시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목표를 조금 낮추더라도 멀리 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첨단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려운 만큼 별도의 적극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규제개혁을 둘러싼 해법은 전문가마다 달랐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지적이 이어졌다.
강성진 교수는 서비스산업과 신산업 육성, 글로벌 기준에 맞춘 규제개혁과 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이 빠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황 교수는 안전·소비자·환경을 보호하는 규제까지 섣불리 완화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할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교수는 "국민 모두가 반도체와 AI만으로 먹고사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을 완화하고 다양한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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