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그들만의 판결문'보다 위대한 '쉬운 판결문'

기사등록 2026/07/06 13:28:14

[서울=뉴시스]이윤석 기자 = "그래서 우리가 이겼다는 거야? 아니면 졌다는 거야?"

선고를 마친 법정을 나오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함께 온 변호사에게 선고 결과를 자세하게 묻거나, 함께 판결을 들은 사람에게 판결의 의미를 묻는 사람을 종종 보곤 한다.

주변 지인으로 변호사 한 명씩은 꼭 알고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방대한 내용과 특유의 난해한 용어들 때문에 법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은 판결문을 받아봐도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하물며 사회적 약자들에겐 한 단계 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보장 소송 절차의 경우 원고의 상당수는 질병, 실업, 노령, 장애, 빈곤 등으로 인해 사법접근권이 제한된 사회적 약자들이다.

반면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회보장 행정청은 사회보장법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원고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사법접근권과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원고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러한 가운데 법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쉬운 판결문'을 제공하기 시작한 건 고무적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지적장애인 원고를 위한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이지리드)'을 별도로 작성해 제공했다.

"판결의 결론. 원고 A씨가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소송에 들어간 돈은 구청이 냅니다."

어려운 법률 용어가 아닌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쓴 판결문이다. 재판 진행 과정도 그림으로 표현해 지적장애인인 원고가 이해하기 쉽도록 도왔다.

이 사건은 지적장애인 A씨가 서울 양천구청을 상대로 자신의 지적장애를 인정해달라고 낸 소송이었다. A씨는 지적장애 주요 판정 기준인 지능점수 70점에 못 미치는 검사 결과를 지난 몇 년간 3번 기록했고, 여러 정신과 전문의들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양천구청은 지적장애를 부정했다. A씨가 검사를 쉽게 포기하는 태도를 보였고, 어릴 때 70점을 넘었다는 이유에서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지적장애인의 기준을 넘었다는 이유를 들며 장애 등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해당 법 전문가인 행정청의 판단을 쉽게 뒤집기 어려웠다.

법원은 행정적 편의 때문에 나눈 '칸막이 방식' 만으로 장애 기준을 판단하면 안 된다며 A씨의 지적장애를 인정했다. 법원은 헌법 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를 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나아가 쉬운 판결문까지 제공했다.

대법원도 올해 하반기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출력물, 점자 파일 등을 제공해 사법 정보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법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런 변화는 특정 사건의 예외적인 사례나 단순한 서비스 개선에 그치면 안 된다. 사법 접근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하나의 시작점이 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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