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그 탁구가 폭주한다 '마티 슈프림'

기사등록 2026/07/01 05:45:00

영화 '마티 슈프림'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굿타임'(2017)과 '언컷 젬스'(2019)를 함께 만든 사프디 형제는 갈라섰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각각 영화를 만들었다. 형 조쉬 사프디는 지난해 '마티 슈프림'을, 동생 베니 사프디는 '스매싱 머신'을 내놨다. 두 영화는 형제의 명성에 걸맞은 결과를 냈다. '마티 슈프림'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에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스매싱 머신'은 작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차지했다. '스매싱 머신'은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았고, '마티 슈프림'은 7월1일 국내 관객을 만난다. '스매싱 머신'이 어떤 영화인지는 알 수 없고, 사프디 형제는 더 이상 함께 영화를 만들지 않지만, '마티 슈프림'만 보면 이들은 아직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만 같다. 조쉬 사프디 감독은 동생과 함께 창조해낸 영화 세계를 억지로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다소 거친 요약이다. '마티 슈프림'은 '굿타임' '언컷 젬스'와 함께 '소란과 야단과 욕망의 3부작'이 된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주인공 마티 마우저는 실제 1950~60년대 주로 활동한 탁구선수 마티 라이스먼이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탁구에 빠져 있던 사프디 감독이 라이스먼이 1974년에 내놓은 자서전 <머니 플레이어: 미국 최고 탁구 선수이자 허슬러의 고백>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 마티 마우저가 운동 능력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데 올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라이스먼에게서 따온 특징이다. 실제로 라이스먼은 도박꾼이자 쇼맨이고 서브컬처 선구자이기도 했다. 위대해지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차 1950년대 뉴욕 거리를 좌고우면 없이 좌충우돌하는 마티 마우저 캐릭터 역시 라이스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사프디 감독은 이런 마티 마우저를 사프디식(式) 플롯 위에 떨어뜨린 뒤 러닝타임 149분을 그와 함께 달린다. 그리고 '마티 슈프림'은 이 징글징글한 인간의 끝을 보려 한다.

'마티 슈프림'에서 탁구는 소재가 아니다. 형식이자 이야기이자 캐릭터다. 지름 40㎜ 크기 탁구공이 세로 2.74m, 가로 1.525m 테이블 위를 핑퐁거리며 빠르게 쉴 새 없이 오가는 경기. 이 작은 공을 위협적이면서 동시에 안전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위해 땀을 쏟아내며 전력으로 채를 휘두르는 선수. 탁구공의 이동과 선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산하게, 그러면서도 긴장된 상태로 움직이는 관중의 눈. 예나 지금이나 주류 스포츠인 적이 없는 종목의 특성. 이게 바로 '마티 슈프림'의 정체성이자 마티 마우저의 정체성이다. 말하자면 사프디 감독은 탁구를 소재로, 탁구 같은 이야기를, 탁구처럼 만들었다. 마티 마우저는 탁구선수처럼 정신없이 뛰고 또 뛰며 탁구공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그리고 관객은 패착과 실수를 반복하며 점수를 빼앗기고 있는 선수를 지켜보듯 마티 마우저의 가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결정들을 긴장 상태로 따라간다.

'마티 슈프림'은 사프디 형제 영화를 챙겨봐온 관객에겐 낯이 익다. 그들의 영화 세계를 관통해온 키워드인 소란·야단·불안·욕망이 '마티 슈프림'에선 탁구로 표현됐을 뿐이다. 위대해지겠다는 야망, 위대해질 수밖에 없다는 자기 확신을 밀어붙이며 온갖 사고를 치는 마티 마우저는 새 삶을 찾겠다며 현금 2만 달러를 들고 달리는 코니('굿타임')와 다르지 않고,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빚을 돌려막고 또 돌려막는 하워드('언컷 젬스')와 다르지 않다. 사람에 사람이 들러붙고, 사건에 사건이 엉겨 붙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진하는 그 방식은 사프디 감독 영화에서 이미 봤던 스토리텔링이다.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과 운동성을 최대한 살려낸 편집 역시 익숙하다. 도무지 정을 붙이기 힘든 주인공에다가 질서보다는 혼란에 더 가까운 사프디의 뉴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뉴욕이다. 미소보다는 조소에 가깝고, 구원보다는 파멸에 가까운 그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마티 슈프림'이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다. 사프디 감독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대신 이야기를 확장한다. '굿타임'과 '언컷 젬스'가 뉴욕이라는 도시의 속도·압박·소음·폭력을 그려냈다면, 신작은 뉴욕이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로 감각 범위를 넓힌다. 말하자면 '마티 슈프림'은 미국의, 미국식 성공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긍정적 뉘앙스로 포장돼 있으나 실상 자기 파괴는 물론 타자 훼손도 불사하고 내달리는 그 오만한 꿈들을 직격한다. '마티 슈프림'이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뒤 미국이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하는 1950년대가 배경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가 마티 마우저의 정자가 레이철의 난자를 만나는 다소 뜬금없는 장면으로 시작해 레이철이 낳은 아기를 마티 마우저가 바라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쏟는 모습으로 끝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로버트 패틴슨은 '굿타임' 전후로 청춘스타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이른바 육각형 배우가 됐다. 애덤 샌들러는 '언컷 젬스'를 '펀치 드렁크 러브' 이후 필모그래피 대표 영화로 만들었다. 티모시 샬라메도 그렇다. 누군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샬라메를, 또 다른 누군가는 '듄' 시리즈의 그를, 어떤 이는 '웡카'나 '컴플리트 언노운'의 샬라메를 기억하겠지만, 샬라메 최고의 연기가 '마티 슈프림'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샬라메는 2시간3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을 사실상 홀로 감당하며 일관된 에너지 레벨로 극을 장악한다. 도무지 지지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맡았는데도 관객을 시종일관 끌어당길 수 있는 건 그 특유의 카리스마 덕분이다. 1995년생인 샬라메는 앞서 두 차례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올해 '마티 슈프림'으로도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기를 보면 오스카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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