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치상죄, 법정 벌금 500만원~징역 15년
약물 등 위험운전죄와 유사…2024년 실형 1%
"포퓰리즘적 엄벌주의…'운 없어서 처벌' 불신도"
사회·기술 변화 따른 新 양형기준 대한 논의도
[서울=뉴시스]이윤석 김정현 기자 = 이른바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를 저지른 경우 가중 처벌하도록 정한 법정형을 완화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법부 내에서 제기됐다.
스쿨존 내 신호위반과 같이 경미한 과실로 빚어진 사고조차도 음주 또는 약물운전 치사상에 준해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다.
장지웅(39·사법연수원 42기) 수원지법 안산지원 판사는 29일 대법원 양형연구회가 개최한 제16차 심포지엄 '교통범죄와 양형'의 주제 발표문 '교통범죄의 양형기준 개선 과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는 2019년 9월 충남 아산시에서 고(故) 김민식(당시 7)군이 숨진 사고로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도입돼 일명 '민식이법'으로 불린다.
그해 12월 시행된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13 등은 스쿨존 내에서 만 13세 미만 아동을 죽게 한 운전자에게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다치게 한 운전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했다.
민식이법의 징역형 범위는 같은 법 5조의11 위험운전 치사상죄의 징역형 형량 범위와 일치한다.
위험운전 치사상죄는 술을 마시거나 약물에 취한 채 운전을 강행해 사고를 낸 경우를 가중 처벌한다.
그런데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는 스쿨존을 운전하던 중 ▲신호준수 의무 ▲통행방법 준수 ▲보행자 보호 ▲서행 및 일시정지 등 사실상 도로교통법에서 정한 모든 운전자의 의무를 어길 경우에도 폭넓게 인정한다.
양형기준 역시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기준은 법정형을 최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300만원까지 감경할 수 있다.
이는 형법상 폭행치상(최저 징역 2개월)이나 고의 또는 결과적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일반상해(최저 징역 2개월)의 양형기준 하한선보다 높다.
장 판사는 "어린이 교통사고 범죄는 위험운전 치사상은 물론 일반 교통사고 치사상 범죄에 비해서도 훨씬 경미한 과실까지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며 "형량 범위는 일반 교통사고 치사상 범죄보다 현저히 높아 적절한 양형을 제약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실범으로서 행위의 불법성이 훨씬 경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량 범위 하한까지 과도하게 높게 책정했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민식이법 시행 후 스쿨존 내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2021년 523건, 2023년 486건, 2025년 927건으로 해마다 들쑥날쑥하는 등 예방효과도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장 판사는 "어린이 상해 또는 사망이라는 결과의 중대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죄질이 가벼운 행위까지 결과만으로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형량 범위 하한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보다 많은 어린이 교통사고 범죄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 있는 양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과실범에 대한 포퓰리즘적 엄벌주의는 범죄의 일반예방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운이 없어 처벌받았다는 사회적 불신만 확산시킬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토론회에서는 음주, 무면허운전 등 다른 교통사고 범죄는 보다 엄중히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 판사는 하나의 교통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음주·무면허운전을 한 경우 양형기준의 특별가중인자로 반영해 가중처벌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음주 측정 거부 행위는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고, 감형 요소로 반영돼 오던 자동차종합보험 가입 여부는 사실상 대부분 운전자가 가입한 점을 고려해 양형인자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선 약물 운전, 초고령 사회, 자율주행 기술 등 사회·기술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류부곤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교통범죄의 새로운 쟁점과 양형정책'를 주제로 이같이 발표했다.
류 교수는 "기존의 교통범죄는 운전자의 위법 행위와 결과를 중심으로 한 책임체계에 따라 규율돼 왔다"며 "최근에는 정신과 의약품 처방의 일상화, 초고령사회 진입,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 등 사회, 기술적 변화로 인해 행위자의 인지 가능성, 사회구조적 요인, 기술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교통범죄가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약물운전은 실제 단속 사례의 상당수가 의료 목적의 처방약 복용과 관련돼있는 현실을 고려해 불법마약 운전과 구별되는 양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고령자 운전은 고령 자체가 아니라 운전 능력과 위험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율주행 시대에는 운전자 중심의 책임구조에서 벗어나 제조사와 시스템 운영자 등 다양한 주체의 책임을 함께 고려한 새로운 양형 정책과 형사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엄벌주의에서 벗어나 엄벌화에서 정밀화로, 응보에서 예방으로, 행위자 단독 책임에서 사회구조적 책임 분배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소준섭 춘천지법 강릉지원 판사는 "약물운전은 의료 목적의 처방약 복용과 불법 마약류 투약 등 행위의 유형과 책임 정도가 다양하다"며 "판례와 실무 경험도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규정의 형식과 법정형 및 위험성 판단의 객관적 지표 등이 상이한 음주운전에 관한 양형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이에 "운전주의 약물에 관한 의학계, 약학계의 논의 등을 바탕으로 약물운전 범행의 특성과 책임 정도를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단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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