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석유최고가격제 인하·전기·가스요금 동결 추진
에너지비용↓…제조업 원가 부담↓공급망 충격 대응
"단기가격 안정 넘어 에너지 리스크 대응 체계 구축"
[세종=뉴시스]김동현 기자 = 정부가 국제유가 하락세를 고려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인하하고 전기·가스 요금을 동결하는 등 하반기 물가안정에 총력전을 펼친다.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을 넘어 우리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산업이 에너지 안보 충격이 산업 리스크로 전이되는 취약 구조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시스템 취약성을 완화하는 방식으로의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5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1.58센트 오른 71.9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WTI는 100 달러까지 치솟았지만 6월 들어 하락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영국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9월 인도분 가격은 전일보다 1.63센트 오른 배럴당 75.50달러, 두바이유는 64달러 수준이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도 중동 전쟁이 마무리되자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그동안 가격을 동결해왔던 석유 최고가격제를 6차 가격대비 리터당 150원 인하하기로 했다.
정부는 민생 안정이라는 최고가격제도의 기본 취지 아래, 국내 석유가격 안정과 국민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국제유가 하락분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7차 최고가격을 전격 인하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석유 최고가격에 대한 리터당 150원 인하는 휘발유, 경유, 등유 모두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은 리터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설정된다. 산업부는 이번 인하 결정에 따라 주유소 가격은 리터당 2000원 초반대에서 1800원대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뚜렷한 안정세를 보인 만큼 석유 최고가격을 하향 조정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중동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큰 상황임을 고려해 제도 시행을 유지하고 4주 조정주기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 전기·가스요금도 동결하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6일 개최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에서 "전기·가스 요금 등 주요 공공요금을 하반기에 동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한전은 올해 3분기에 적용될 연료비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5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 구 부총리의 발언에 따라 일반용 전기요금은 13개 분기 연속 동결될 전망이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인하 및 유지, 전기·가스요금을 동결한 가장 큰 이유는 물가 안정이지만 한편으론 물가 상승이 우리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우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다. 국제유가가 상승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정유·석유화학 뿐 만 아니라 철강, 시멘트,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대부분의 산업이 영향을 받는 구조로 돼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철강, 화학 등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의 핵심 생산 요소가 전기요금이라는 점을 고려해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줄여주고 수익성 악화를 막아 투자와 고용을 유지하려는 것이 이번 전기·가스 요금 동결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 인하도 비슷한 맥락의 결정이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소비자 물가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를 낮춰 소비심리 위축을 막고 가계의 실질 구매력 개선을 노린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소비가 살아날 경우 내수 기업의 매출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고 제조업의 생산 확대 등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기름값 인하→가계부담 및 운임비 하락→소비심리 개선→제조업 생산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번 정책은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이 언제 재발될 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국내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해상운임과 에너지 조달비용 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들린다.
다만 일각에선 가격 안정책으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정책은 재정 부담과 함께 장기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변동성 확대는 기업의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며 특히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비용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며 "2022년 유가·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충격 시기에 철강·석화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통해 비용 충격이 산업 전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국과 동일한 정책으로 접근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단기 비용 안정화-중기 투자 여력 확보-장기 산업구조 고도화'로 이어지는 체계적 정책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산업용 전기요금 합리화, 전환금융 실효성 확보, 고부가각치산업 전환 촉진 등 에너지 가격 리스크 관리와 전환 투자 지원을 결합한 '리스크 대응형 전환 전략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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