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지만…" 한쪽 팔 잃은 노병의 하루[르포]

기사등록 2026/06/25 09:00:00 최종수정 2026/06/25 09:15:05

대구보훈병원서 만난 6·25 참전유공자 임명식(95)씨

포탄에 오른팔 잃고 폐 절제술까지

사라져가는 노병들…평균 연령 '91.6세'

전쟁 상처 안고 오늘도 '재활'

[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4일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병동에서 6·25 참전유공자 임명식(95)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26.06.25. jjikk@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뉴시스]정재익 기자 = "전우들은 많이 못 돌아왔지."

지난 24일 오후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병동에서 만난 6·25 참전유공자 임명식(95)씨는 70여 년 전 전쟁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힘없이 답하는 쉰 목소리는 기자가 귀를 가까이 대야 겨우 들릴 정도였다. 숨을 고를 때마다 말은 자주 끊겼다.

1952년 육군 제5사단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한 그는 치열했던 고지전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오른팔을 잃었다. 가슴에도 파편이 박혔다. 이후 폐 손상으로 폐 절제술까지 받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여전히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절단된 팔은 이미 사라졌지만 없는 팔이 저리거나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환상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가슴 속 파편 부위도 날씨가 흐린 날이면 통증을 일으킨다.

전쟁 당시 입은 폐 손상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폐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고 음식을 삼키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목소리는 가늘고 약했다. 청력도 많이 떨어져 대화 내내 귀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질문해야 했다.

그럼에도 임씨는 묻는 말 하나하나에 답하려 애썼다.
[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4일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 운동치료실에서 6·25 참전유공자들이 수동 상하지 운동기를 타고 있다. 2026.06.25. jjikk@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임씨의 하루는 병실보다 재활센터에서 더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운동치료실에 도착한 임씨는 수동 상하지 운동기에 익숙하다는 듯 몸을 맡겼다. 치료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리에 앉은 그는 곧바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팔은 없었지만 두 다리는 쉼 없이 페달을 밟았다.

9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능숙한 모습이었다. 치료사가 기계 속도를 조절하는 동안에도 동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숨이 차 보였지만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에는 운동치료실, 작업치료실, 도수치료실, 심장재활치료실, 전기온열치료실, 연하(삼킴)재활실 등이 마련돼 있었다.

치료사는 "(임씨가) 복합운동치료와 도수치료, 전기온열치료, 연하재활치료 등 하루 평균 4개의 재활 프로그램을 각 30분씩 소화한다"고 설명했다.
[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4일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 전기온열치료실에서 6·25 참전유공자 임명식(95)씨가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2026.06.25. jjikk@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활은 그의 일상이었다.

연하재활실에서는 목 주변에 전극을 붙이고 치료가 진행됐다.

음식을 삼키는 기능을 돕기 위한 연하재활 과정이었다. 전기 자극으로 삼킴 근육을 활성화하고 혀와 구강 근육을 자극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상태에 따라 요거트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삼키는 연습도 실시됐다.

임씨는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지만 재활 과정에서는 적극적이었다.

치료사의 지시에 맞춰 반복 동작을 수행했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소화했다. 힘들 법도 했지만 중간에 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4일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에서 6·25 참전유공자가 보행 운동을 하고 있다. 2026.06.25. jjikk@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활센터 곳곳에서는 비슷한 풍경이 이어졌다.

평행봉을 붙잡고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국가유공자,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팔을 들어 올리는 환자, 휠체어에 앉아 운동기구를 움직이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남은 상처는 모두 달랐지만 다시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같아 보였다.

대구보훈병원에 남아 있는 국가유공자들은 대부분 80~90대에 접어들었다.

병원에 따르면 현재 입원 중인 6·25 참전유공자의 평균 연령은 91.6세다. 전체 입원·외래 환자의 평균 연령은 72.2세이며 80세 이상 환자 비율은 29%에 달한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병원을 찾은 참전유공자는 2021년 13만7543명에서 지난해 11만1163명으로 줄었다. 5년 새 약 2만6000명이 감소했다.

병원 복도에서 만나는 노병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6·25의 마지막 풍경'인지도 몰랐다.

박해운 재활센터장은 "과거에는 생명을 살리는 치료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가 더 중요해졌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이 마지막까지 존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훈병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령 유공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재활과 돌봄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며 "남은 여생을 보다 건강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했다.
[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4일 대구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 운동치료실에서 6·25 참전유공자들이 수동 상하지 운동기를 타고 있다. 2026.06.25. jjikk@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취재를 마치자 임씨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몇 걸음마다 숨을 골라야 했지만 끝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기자를 배웅했다.

그리고 기자의 귀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잘 가이소."

대구보훈병원 재활센터에서 이어지는 노병들의 하루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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