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결제망 피해 원유 대금 받은 이란…중국 CIPS가 우회로 됐다
美 "돈줄 차단" 제재에도 위안화 결제 확산…핵협상 카드 약해지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중국 위안화 결제망 확산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압박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제재의 핵심 기반은 달러 결제망이다. 달러로 거래하면 대개 미국 은행망에 흔적이 남고, 미국 정부는 이런 거래 기록을 추적해 제재 대상의 자금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위안화로 결제하면 미국 금융망을 거치지 않아 감시와 차단이 어려워진다.
위안화 결제가 제재 회피 통로로 쓰인 대표 사례는 지난 4월 말 헝리석화 제재 때 드러났다. 미국은 중국 대형 정유업체 헝리석화가 이란산 원유를 대량 구매했다고 봤고, 이 회사는 공급업체로부터 해당 원유가 이란산이 아니라는 보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이후 원유 거래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미국 제재망을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에너지 시장의 주된 결제 통화인 달러를 피하면 미국 당국이 거래 흐름을 파악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협상 과정에서 이란이 원유를 팔고 달러로도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재가 적용되던 2024년에도 이란이 달러 결제망 밖에서 적지 않은 원유 수입을 올렸다는 점이다. 미 에너지정보청은 이란의 2024년 원유 판매 수입을 달러 환산 기준 최대 430억 달러 규모로 추산했다.
이런 우회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이란은 2021년 25년 전략협정을 맺으며 원유, 인프라, 금융 분야 협력을 확대했다. 당시 공개된 전략협정 초안에는 이란이 원유를 공급하고 중국이 항만, 철도 등 인프라에 투자하는 구상이 담겼다.
이란은 중국 구매자들과 함께 원유의 출처를 숨기기 위한 비밀 거래망도 구축했다. 이란 권력 핵심 조직인 혁명수비대 등은 비밀 무역조직과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 대상 원유를 옮길 때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도 활용했다. 선박 위치 신호를 끄거나 해상 환적을 통해 원유의 출처를 숨기는 방식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일부 선박에도 위안화 결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안전 우려가 커진 기간 해협을 안전하게 지나려는 선박들이 이란 측으로부터 위안화나 가상화폐로 비용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소유 컨테이너선 뉴보이저가 이란 측에 안전 통과 비용 명목으로 200만 달러 상당을 위안화로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중국 측 업체들은 홍콩 등지에 비밀 중개업체와 위장회사를 세워 위안화 결제를 우회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거래는 중국이 2015년 만든 위안화 기반 국제결제 시스템 CIPS를 통해 처리됐다.
규모는 아직 스위프트가 훨씬 크다. 그러나 CIPS 거래량은 이란을 둘러싼 군사 긴장이 고조된 뒤 빠르게 늘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따르면 2월 말 이후 3개월간 CIPS 하루 평균 거래액은 약 7900억 위안, 달러 기준 약 115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달러 밖 결제 흐름은 이란에만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도 미국 제재 이후 중국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크게 늘렸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대러 제재를 강화하자 러시아의 대중국 원유 수출과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커졌다. 러시아 당국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 간 무역의 90% 이상이 위안화와 루블화로 결제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변화는 개별 국가 사례에 그치지 않고 국제 무역금융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스위프트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무역금융에서 위안화 비중은 최근 5년 사이 세 배로 늘어 지난 4월 6%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한동안 유로화를 제치고 달러 다음으로 많이 쓰인 통화가 됐다.
중국의 달러 밖 결제망 확대는 CIPS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은 달러를 거치지 않고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로 국제 거래를 정산하는 새 통로도 키우고 있다. 이 결제망은 ‘mBridge’로 불린다. mBridge는 결제 과정에서 미국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구조여서, 미국의 제재 감시망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대만 문제도 있다. 중국은 대만 문제로 미국과 정면충돌할 경우 이란·러시아식 금융 제재가 중국에도 가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도 달러 결제망 밖에서 커지는 제재 회피 통로를 의식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란의 대중국 원유 수출과 중국 금융망을 통한 자금 흐름을 줄이기 위해 헝리석화 등 중국 정유업체를 추가 제재했다. 이란 관련 위장회사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은행들에도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다.
WSJ은 이번 사안은 이란의 제재 회피를 넘어, 달러를 앞세워 상대국 돈줄을 막아온 미국의 제재력이 예전만 못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제재를 낮춰주고 해외에 묶인 자산을 풀어주는 방안을 이란 핵협상의 압박 카드로 쓰려 하지만, 이란이 이미 위안화 결제망으로 제재를 견딜 우회로를 확보했다면 미국의 협상 카드도 예전보다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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