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로 시신모아 묻었다" 잊혀진 6·25 전쟁 상흔[출동!인턴]

기사등록 2026/06/25 06:50:00 최종수정 2026/06/25 06:51:46

주민도 모르는 전쟁의 상흔… 6·25 전쟁 76주년

[광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마을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평택=뉴시스]우은식 기자, 이지윤 김드보라 인턴기자 =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의 한 마을. 좁은 도로 옆으로는 무성한 풀이 자라 있었고, 산자락 아래에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량 몇 대가 오갈 뿐 주변은 한적했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194고지 전투지 인근이다. 그러나 현장은 예상보다 평범했다.

격전지임을 알리는 비석이나 기념시설은 보이지 않았고 일부 구간에는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조용한 마을의 풍경 속에서 이곳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광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2리 마을회관.  *재판매 및 DB 금지

곤지암2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정명재(73)씨는 “소문에 의하면 시체가 너무 많아 갈퀴로 시체를 모아 묻었다고 한다”며 “엄청 많이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곤지암 194고지 전투는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일 연전연패하던 국군이 매복 작전을 통해 북한군 보급 대열을 차단하는데 성공한 숨은 격전지 가운데 하나다.

이종분(78)씨 역시 “자세한 위치나 상황은 우리도 잘 모르고, 그때 전쟁을 보거나 참전하셨던 분들이 다 돌아가셔서 확인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도 유해 발굴이라고 써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전쟁에 대해 아는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셔서 별다른 소득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아버지가 6·25 전쟁 때 돌아가셨는데 주민등록번호도, 군번도 몰라 찾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나쁘지 않다”며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전쟁 역사를 주민회관 게시판에 붙여두자고 이장에게 건의했었다”고 말했다.
[평택=뉴시스] 이지윤 인턴기자 = 평택역 2번 출구를 나오자 공영주차장과 카페가 자리해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평택역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평택역 2번 출구를 나오자 왼편에는 공영주차장과 철도가, 오른편에는 대형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었다. 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었고 인근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과 카페,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출퇴근 시간대 시민들이 오가며 일상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평택역 오폭사고 당시 모습(사진 출처: 경기도청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이 평범한 공간은 1950년 7월3일 유엔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던 장소로 기록돼 있다.

당시 평택역 주변에 모여 있던 주민과 피란민들이 공습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전쟁 초기의 혼란 속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는 명확히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현재 이 지역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었다.

평택역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은희(45)씨는 “평택역에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 몰랐다.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평택 토박이로 인근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모(67)씨 역시 “생전 처음 듣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1950년대 오폭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90세 이상 어르신들일 것”이라며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택=뉴시스] 이지윤 인턴기자 = 평택역을 관통하는 철도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장에서는 오폭 사건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기념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생활 공간이 됐지만 과거 전쟁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곤지암 194고지 전투지와 평택역 오폭사건 현장. 하나는 한적한 마을에, 다른 하나는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장소임에도 이를 알리는 흔적과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사벌역사문화연구소 한도숙 대표는 “평택역 오폭으로 희생된 군인은 일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의 규모와 실태는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다”며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객관적인 사실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지역에 추모비나 안내판 같은 최소한의 기억 장치라도 마련돼야 한다”며 “전쟁의 참상과 희생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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