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으로 벼랑 끝 내몰려
수술 중증도 산정시 정형외과는 비중증으로
한 상급종합병원의 정형외과 의사가 토로한 말이다. 정형외과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환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상급종합병원에 꼭 필요한 진료과이지만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으로 사라질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형외과 진료는 척추나 척수 손상, 대퇴골 골절, 고관절 골절 등 응급·필수의료 성격이지만 비필수 의료로 분류되면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 고관절이 골절된 환자나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은 고위험 산모가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이른바 '응급실 뺑이'를 돌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앙대광명병원에 따르면 전남 광양 지역에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 A씨는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어 병원을 전전하다 300여㎞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과 수술을 마쳤다.
이 임산부는 수술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인근에서 병원을 찾지 못해 7시간 동안이나 대기를 해야 했다.
A씨는 출근 중 도로에 떨어진 구조물로 인한 교통사고로 손목 골절상을 입었다. 차량이 폐차될 정도의 큰 사고였으며 인근 의료기관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출산이 임박한 상태에서 수술이 필요한 복합 상황이었다.
만삭 임신부가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태반 조기 박리나 조기진통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외상으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마취와 약물 사용에 제약이 있어 치료 결정이 쉽지 않은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이 임산부는 결국 약 300㎞ 떨어진 중앙대광명병원으로 이동해 무사히 출산과 치료를 마쳤다. 산모가 병원을 전전했던 것은 출산과 외상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골절 부위의 상태를 고려할 때 자연분만이 어려웠고, 산부인과를 비롯해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신생아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다학제진료도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고위험 산모에 해당하다 보니, 병원들이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은 것이다.
또 89세 여성 박모씨도 집 안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 발생했지만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 시기를 놓쳤다. 고혈압, 천식, 치매, 신부전, 심부전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그는 지난해 4월 심장 스텐트 시술을 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거동이 어렵고 마취 및 수술 위험도 높은 고위험 환자다.
그는 지역 중소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기저질환 및 심장 병력으로 위험이 높아 중환자실과 협진 시스템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권유 받았다. 그러나 여러 대학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나 고관절 및 외상 담당 전문 인력 부족, 정형외과 수술실 배정 축소 등으로 즉시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웠고, 치료가 지연됐다고 한다.
의료계는 이런 상황에 이른 배경으로 정형외과 수술의 중증도 산정 구조와 보건복지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부터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중증진료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증수술 및 중환자실에 대한 수가를 인상하고, 일반병상은 5~15% 감축하는 대신 중환자실과 권역응급, 외상센터 병상, 뇌졸중집중치료실 등의 병상을 확충할 수 있도록 구조전환 지원금을 지급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은 중증수술이나 중증응급, 희귀질환 치료 등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근골격계 질환을 주로 다루는 정형외과는 수술실을 배정받기도 어려워 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들은 정형외과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상급종합병원에 꼭 필요한 진료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의 한 의사는 "정형외과는 비필수 의료로 분류돼 수술할 때 마다 적자가 발생하고, 병상도 축소되고 있어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질환으로 적기에 수술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고관절 골절은 고령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중증 응급 질환이다. 고령자의 고관절 골절은 단순 골절과 달리, 조기 수술과 집중 치료가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관절 골절 후 1년 내 사망률은 약 20% 수준이며,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사망률은 70%까지 올라간다.
고관절 골절시 24~48시간 이내에 수술을 해야 하는 응급질환이며, 수술이 지연될 경우 폐렴, 욕창, 심혈관계 합병증 등 2차 합병증 위험 증가한다.
의료계는 정형외과 진료는 응급·필수의료로 분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척추·척수 손상 이후 표준화 사망비는 1.47~5.0에 달한다. 하지만 대퇴골 골절 48시간 내 조기 수술을 할 경우 사망위험은 26%가 감소한다.
의료계의 한 인사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으로 수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수술을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커졌다"며 "상급종병의 정형외과 수술은 손해율이 20%를 넘는 경우가 많다보니 수술실과 병실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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