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신입 개발자도 채용이 중단된 지 한참 됐습니다."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의 씁쓸한 고백이다.
한때 '문과생도 코딩만 배우면 취업한다'던 시절이 있었다. 전공을 가리지 않고 인재가 몰렸다. 관련 교육 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불과 몇 해 사이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신입 개발자가 앉을 책상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직 채용 공고에서 신입이 차지한 비중은 2022년 53.5%에서 2024년 37.4%로 급감했다. 2년 새 16.1%포인트나 줄어든 수치다. 다른 직무나 연구·공학 분야와 비교해도 내림 폭이 훨씬 가팔랐다.
일자리 실종 배후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숙련된 개발자가 AI 코딩 도구를 손에 쥐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신입에게 맡겼을 단순 코드 작성이나 자료 검색을 AI 도움을 받아 직접 해치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사람을 새로 뽑을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한국은행 역시 챗GPT 출시 이후 3년간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정보서비스업에서 청년 고용이 일제히 줄었다고 짚었다.
신입의 문만 좁아지는 게 아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에선 있던 일자리마저 한꺼번에 사라지고 있다. 메타는 최근 전체 직원의 10%가량인 약 8000명을 해고했다. 동시에 7000명은 AI 관련 부서로 배치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AI 중심 조직'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카카오게임즈 한상우 대표는 실적 발표에서 "AI 기반 툴을 준비해 대규모 인력 증원 없이도 신작 개발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도 현장의 변화가 명확하다. 게임업계 종사자의 72%가 이미 업무에 AI를 쓰고 있다. AI 덕에 업무 시간이 평균 32.4% 줄고 생산성은 30% 이상 개선됐다는 응답이 많았다.
엔씨도 역시 전사적인 AI 향상 조직 가동을 예고했다. 직접 '감원'을 말하진 않았지만, '효율화'와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될수록 개발 인력 수요 구조가 달라질 것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현장의 화두를 바꾸고 있다. 그동안 IT·게임업계 노사 갈등의 단골 주제는 성과급이었다. 잘 벌었으니 더 나누라는 '분배'의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갈등의 무게중심은 '고용 안정' 쪽으로 옮겨가는 조짐이 뚜렷하다.
카카오 그룹이 대표적이다.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엑스엘게임즈는 경영난 속에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고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또 다른 계열사 디케이테크인에서도 인력 감축 우려가 겹치며 고용 불안이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카카오 노조가 올해 교섭에서 '고용 안정'을 핵심 요구로 내건 배경이다.
물론 특정 회사의 어려움을 곧장 AI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신작 부진이라는 자체 요인이 크다. 하지만 AI가 적은 인력으로도 서비스를 굴릴 수 있는 환경을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고용 불안이 한 회사만의 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옛 방식대로 인력을 더 투입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며 산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속도와 준비다. AI가 끌어올린 생산성의 과실은 기업과 일부 숙련 인력에게 돌아간다. 반면 그 대가로 사라지는 신입의 자리와 밀려나는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진짜 경쟁력은 AI 전환의 충격을 사회가 얼마나 슬기롭게 나눠 지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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