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있어도 동결못하는 주가조작 원금…'돈 남는 범죄' 안되게 법 개정해야[기자수첩]

기사등록 2026/05/27 18:40:57 최종수정 2026/05/27 18:50:15
[서울=뉴시스]이태성 기자 = "주가조작으로 감옥 한번 갔다 와도 수중에 몇십억원이 남는다고 하면 범죄가 끊이겠습니까? 돈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금융범죄를 다루는 수사기관 종사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돈이 남는 한' 범죄를 완전히 근절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출범 이후 '주가조작은 곧 패가망신'이라는 기조하에, 강력한 처벌뿐만 아니라 범죄 수익을 환수해오는 기능을 강화해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특정 범죄 피의자의 사망, 소재불명으로 공소제기가 어려워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가 국회 법사위에서 의결됐고, 이달엔 특정 불법사금융 범죄를 범죄피해재산 환부대상에 추가하는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환수 규모 또한 최근 증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검찰이 최근 5년간 환수한 범죄수익은 ▲2022년 993억원 ▲2023년 923억원 ▲2024년 1526억원 ▲2025년 1396억원 등이다. 올해에도 3월 기준 120억원을 기록하며 환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일선에서는 여전히 주가조작 사건 관련한 법의 허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뿐만 아니라 범죄에 투입된 원금까지 완벽히 차단해야 하는데 현행법이 그 '판돈'을 묶어두지 못해 범죄의 기회비용을 낮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현직 증권사 직원과 유명 인플루언서 남편, 전직 축구선수 등이 연루돼 최근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코스닥 상장사 듀오백 주가조작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영화 '작전'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총책 A씨는 전주 역할을 한 재력가 B씨(유명 인플루언서 남편)와 함께 두 팀을 이뤄 시세조종 범행을 이끌었다.

기소된 공범만 모두 9명. 이들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1600회, 289억원 상당의 시세조종성 주문으로 14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이번 사건이 특이한 점은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주가조작 범행에 이용된 원금을 매우 구체적으로 특정했다는 사실이다.

피의자들은 캐리어에 담긴 현금 30억원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보관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 사진은 다른 공범에게 돈을 건넸다고 증명하거나, 과시 등의 이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현금이 담긴 캐리어가 선수 역할을 한 증권사 직원의 사무실에 실제 전달된 정황까지 확인했다.

문제는 이렇게 30억원의 현금이 주가조작 범행에 사용됐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해당 자금에 대한 동결 등 조치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법의 미비에서 비롯됐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범죄는 수익뿐만 아니라 원금도 필요적으로 몰수·추징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수사·재판 단계에서 재산을 미리 묶어두는 몰수·추징 보전의 기준이 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는 이 주가조작 원금이 포함되지 않는다.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재판 기간 동안 그 원금을 동결해둘 법적 수단이 없다 보니 장기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범죄자들이 원금을 다른 곳으로 처분하거나 빼돌릴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범죄자들에게 "범행이 걸려도 판돈은 안전하게 건질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 범죄의 기회비용을 낮추는 허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에 법 개정을 통해 두 법 사이 충돌하는 부분을 해소하고 시세조종 범죄 관련 추징 보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은 지난 6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이번 증권사 간부 등 연루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한 이승주 서울남부지검 부부장검사는 "범죄자들의 입장에선 설령 처벌을 받더라도 돈이 남으면 범죄의 동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것"이라며 "범죄의 유인을 없애기 위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추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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