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 대금, 가상자산망 거쳐 이동 정황
미 법무부, 바이낸스 통한 제재 우회 여부 조사
트럼프 일가 코인사업 후원 관계도 다시 주목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바이낸스 내부 보고서와 블록체인 자료, 해외 법집행 당국자, 비공개 문건 등을 인용해 이란 정권 관련 자금 수십억 달러가 최근 2년간 바이낸스를 거쳐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제재망을 피해 거래해온 이란 사업가 바바크 잔자니는 바이낸스에서 비밀 결제망을 운영했다. 그는 스스로를 “반제재” 사업가라고 불러온 인물로, 미국은 그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자금 조달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올해 1월 다시 제재 명단에 올렸다.
바이낸스 내부 보고서에는 잔자니가 운영한 네트워크가 최근 2년 동안 바이낸스에서 8억50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 대부분은 하나의 계정에서 이뤄졌고, 잔자니의 여동생과 연인, 회사 임원 등도 추가 계정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낸스 조사관들은 이들 계정이 같은 기기에서 접속된 점을 포착했다. WSJ는 이 같은 접속 패턴이 이란 제재를 피하려는 정황으로 내부 보고서에 기록됐다고 전했다. 주요 계정은 여러 차례 내부 경고가 나온 뒤에도 최소 15개월 동안 계속 운영됐고, 올해 1월에도 열려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낸스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바이낸스 대변인은 해당 정보가 부정확하다며 당시 제재 대상인 개인이나 디지털 지갑과의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 문제로 지적된 거래의 “압도적 다수는 바이낸스 플랫폼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WSJ는 잔자니 네트워크의 8억5000만 달러 거래액에는 입금과 출금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테러자금 추적 전문가들은 이런 계정이 투자 목적보다는 자금 이전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는 약 4억2500만 달러가 이란 군사자금 조달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이란 관련 자금 흐름도 확인됐다고 WSJ는 전했다. 이란 중앙은행이 지난해 여러 단계를 거쳐 1억700만 달러 상당의 가상자산을 바이낸스 계정으로 보낸 정황이 파악됐고, 2024~2025년 바이낸스 계정과 이란 테러자금 조달자·제재 대상 관련 디지털 지갑 사이에서 약 2억6000만 달러 규모의 직접 거래가 기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법무부는 바이낸스가 2023년 자금세탁 방지 및 제재 위반 혐의로 유죄를 인정한 이후에도 이란이 바이낸스를 통해 제재를 우회했는지 조사 중이다. 당시 바이낸스는 43억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했고, 창업자 자오창펑은 자금세탁 방지 규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인정한 뒤 징역 4개월을 복역했다.
자오창펑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WSJ는 또 바이낸스가 트럼프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의 주요 후원자 역할을 해왔고, 이 사업이 2024년 이후 트럼프 일가에 최소 12억 달러를 벌어줬다고 보도했다.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은 논평을 거부했다.
WSJ에 따르면 잔자니가 운영한 가상자산 업체 제드섹스(Zedcex)는 런던 주소지에 등록된 거래 플랫폼으로 소개됐지만, 미 재무부와 해외 법집행 당국자들은 실제 주요 고객이 이란 혁명수비대였다고 보고 있다. 이란산 원유 판매 대금은 튀르키예 은행을 거쳐 제드섹스로 들어갔고, 제드섹스의 바이낸스 법인 계정은 이를 혁명수비대와 연결된 디지털 지갑으로 전송했다는 것이다.
잔자니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잔자니 대변인은 WSJ에 그가 “자금세탁이나 제재 회피 목적으로 어떤 가상자산거래소도 필요로 하거나 의존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바이낸스 계정 관련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고 WSJ는 전했다. 이란은 제재로 기존 금융망 이용이 막히자 가상자산 의존도를 키워왔으며,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는 이란인들이 지난해 100억 달러 넘는 가상자산 거래를 한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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