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 "합의 없이 단 1대도 못 들어온다" 반발
초스피드 고령화에 현장 기피 심화…위험·반복 업무 메울 로봇 대안론 팽팽
청년들 일 배우며 성장할 사다리 실종 우려…사람·로봇 역할 분담 서둘러야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대량 생산과 생산 현장 투입 시 고용 충격이 불 보듯 뻔하다. 노사 합의 없이 단 1대도 들어올 수 없다."
최근 국내 주요 제조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터져 나오는 이 같은 경고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를 앞둔 산업 현장의 공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공지능(AI)이 온라인 세상을 넘어 현실의 기계와 로봇을 움직이고, 인간의 육체노동까지 대신하기 시작했다.
'로봇 포비아(로봇 공포증)'는 더 이상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생산현장의 고용 문제로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화장실도 안 가고 24시간 척척…사람 자리 꿰차는 로봇 비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의 일터로 들어오는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기업 피규어AI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작업 영상은 로봇 노동 시대가 코앞에 닥쳤음을 증명했다.
로봇은 쉬지도 않고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다. 택배 상자를 집어 방향을 판단한 뒤 컨베이어 벨트에 밀어 넣는 작업을 묵묵히 반복했다. 사람보다 지치지 않는 강력한 노동력이 실제 생산현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다.
게다가 과거 산업용 로봇은 펜스 안에서 지정된 동작만 반복했다. 반면 최신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기존 작업 공간에 그대로 걸어 들어온다. 자동화 설비를 새로 깔지 않아도 사람이 일하던 자리에 로봇을 바로 투입할 수 있다. 고용 충격의 범위가 훨씬 넓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로봇이 특정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자리 자체를 통째로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일할 사람이 없다"…세계 1위 저출산 대한민국, 로봇 대안론
하지만 로봇을 무작정 일자리의 적으로만 몰아세우기도 어렵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과 고령화를 겪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인구 감소는 이미 눈앞의 현실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5년 기준 0.80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제조업의 노동력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국가적 위기다.
여기에 젊은 층의 제조·건설 등 현장 노동 기피 현상까지 겹쳤다. 생산현장에서는 이미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호소가 이어진다. 위험하거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일수록 인력난은 더 심각하다.
제조 현장의 위험 작업, 건설 현장의 무거운 물건 운반, 물류창고의 분류 이송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하기 위험하거나 장시간 반복해야 하는 일을 로봇이 맡으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로봇이 무조건 사람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보완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불 꺼진 무인 공장의 그늘…청년들 경력 쌓을 '사다리'가 끊긴다
그럼에도 산업 현장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투입에 강하게 제동을 건 것도 단순히 새 장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로봇이 들어오는 순간 물량 배분, 공장 운영 방식, 인력 유지 구조가 한꺼번에 뒤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로봇과 AI가 알아서 제품을 찍어내는 무인공장, 즉 '다크팩토리(Dark Factory)'도 노동자들에게는 공포 대상이다. 기업에는 최고의 혁신이지만 노동자에게는 고용 축소의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기술 도입 시 노조 동의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은 신입 인력이 맡아온 '진입 장벽 일자리'다. 지금까지 현장 노동자들은 단순 업무부터 시작해 현장 감각을 익히고 숙련도를 쌓아왔다. 하지만 로봇이 이 초기 업무를 빠르게 채 가면서 청년들이 일을 배우며 경력을 시작할 사다리 자체가 사라질 위기다.
◆ "같이 가야 산다"…사람과 로봇의 역할 재설계 해야
결국 핵심은 로봇을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사람과 로봇이 어떤 방식으로 사이좋게 일할 것인지 해법을 찾는 일이다.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위험한 일까지 사람에게만 맡기는 방식은 오래갈 수 없다. 반대로 기업이 비용 절감 논리만 내세워 로봇 도입을 밀어붙이면 노동자에겐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가 된다.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움직이는 AI 시대의 과제가 인간의 완벽한 대체가 아닌, 정교한 '역할 분담'이라고 진단한다. 로봇이 위험하고 단조로운 육체노동을 전담하고, 사람은 로봇을 관리·제어하는 고도화된 업무를 맡는 직무 전환 체계를 짜야 한다. 로봇이 들어오는 속도만큼 사람을 다시 교육하는 시스템이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엄성용 중앙대 지식경영학부장은 "AI 도입이 노동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지속 가능한 생산 체계를 확립할지가 향후 산업계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 협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로봇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지, 기존 노동자의 고용은 어떻게 지킬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초급 업무가 자동화되는 만큼 청년들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을 새로운 성장 경로를 국가 차원에서 새로 설계해야 한다.
김호림 AI인사이츠포럼장은 "기술 기업과 노조가 상시 소통하는 ‘이해관계자 라운드테이블’을 정착시켜야 한다"며 "노동 현장의 위협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패널 도입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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