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달러 강세 겹쳐 통화 가치 급락…외환보유액 감소 우려'
인도 필리핀 사상 최저…인도네시아 루피아 1997년 금융위기 때보다 약세
원·달러 환율 6거래일째 1500원대…정부·한은 "필요 시 단호히 조치"
[서울=뉴시스]김민수 기자 =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연일 1500원대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주요국 통화 가치도 일제히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가 급등과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가치 방어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인도 루피와 필리핀 페소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수준보다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원유 수입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유가가 오를수록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자국 통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수요가 늘면서 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중동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긴장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데다 달러 강세까지 겹치며 아시아 통화 가치 하락세가 심화한다는 분석이다.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지난 1일 장중 배럴당 126.41달러까지 치솟으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지난 3월 배럴당 119.48달러로 2022년 이후 고점을 기록했다. 유가는 전쟁 발발 이후 약 50% 상승한 상태다.
브렌트유와 WTI는 전날도 각각 배럴당 102.58달러, 96.35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 급등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며 아시아 통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5%를 돌파하며 20여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각국은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도하고 자국 통화를 매입하며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엔화 방어를 위해 약 630억달러(약 95조원)을 투입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으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자국민에게 수입 연료 소비 절약과 해외여행 자제 등 긴축을 촉구했다.
다만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에너지 수입 가격까지 계속 상승할 경우 외환보유액 감소 부담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외환보유액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각각 약 80억 달러(약 12조원)씩 감소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외환보유액의 5%, 필리핀 외환보유액의 7%가 줄어든 수준이다. 인도도 5월 초 기준 외환보유액 약 270억 달러(약 40조6000억원)가 줄어 4%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ANZ은행은 "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은 현재 시장 개입 수준을 지속하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의 중동 에너지와 달러 의존 구조가 다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나 우르 레만 EBC파이낸셜그룹 시장 분석가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는 미래의 충격을 위해 제도를 강화했지만 중동 전쟁은 다른 종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며 "이번 위기는 새로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해온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헀다.
한편 원·달러 환율도 중동 전쟁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쟁 직전인 지난 2월 27일 서울외환시장 주간거래 종가 기준 환율은 1439.7원이었지만 이날 1517.2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종가 기준 6거래일째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31일에는 장중 1536.9원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측면이 있어 경계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 "필요 시 단호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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