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로 무력충돌 회피 어려워져"
"각 가정에 '전민 항쟁' 지침 배포"
"미군과 전면전 비현실적" 관측도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쿠바 정권 최고 실권자 라울 카스트로 전 공산당 총서기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하고 항공모함 전력을 전개하는 등 정권 붕괴 압박을 본격화했으나, 쿠바는 항전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CNN 에스파뇰(스페인어)판은 21일(현지 시간) '카스트로 기소가 미국-쿠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 제하의 기사에서 "이번 기소는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양국간 무력 충돌 회피 가능성을 완전히 끝냈을 수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매체는 "트럼프는 쿠바 정부가 '협상에 절박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다가 결국 군사 공격을 했다"며 "쿠바 정부가 총 한 발 쏘지 않고 권력을 넘기기보다는 끝까지 저항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쿠바는 모든 공식 연설이 '조국이냐 죽음이냐(Patria o muerte!)'라는 구호로 끝나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혁명의 상징이자 국가 최고 원로인 카스트로 전 총서기를 직접 겨냥하면서 쿠바가 결사 항전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진단도 있다.
고령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물리적으로 끌고갈 가능성은 낮지만, 살인 혐의 기소만으로도 양국간 정상적 대화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는 카스트로 전 총서기가 직접 임명한 인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에서 대(對)쿠바 협상을 맡았던 히카르도 수니가는 "그는 살아 있는 혁명 그 자체"라며 "워싱턴이 이번 기소로 쿠바 정부와의 소통을 차단해버렸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양측 좌절감이 결국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바는 카스트로 전 총서기가 기소된 사건인 1996년 미국 쿠바 망명 지원 단체 '구출의 형제들' 항공기 격추 사건 역시 정당한 자위권 행사에 가까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당시 해당 항공기들이 아바나 상공에서 반정부 전단을 살포했고, 이에 대응 사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CNN 에스파뇰은 "당국은 지금도 주권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쿠바군은 이미 미국 공격에 대비한 훈련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군이 크게 저항하지 않았고 마두로 측근들도 빠르게 굴복했으나, 쿠바의 카스트로 충성파들은 훨씬 공격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쿠바 정부가 이미 민간에까지 전쟁을 준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쿠바 민방위청은 지난 16일 '군사 침략에 대비한 가족지침서'라는 제목의 문건을 가계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민간인이 게릴라전 등을 통해 외국 침공에 저항한다는 '전민항쟁' 교리에 입각한 문건이라고 한다.
알자지라는 복수의 전문가를 인용해 "쿠바가 정전, 석유 봉쇄로 인한 연료 부족, 마두로 축출 이후 에너지 상실로 어려움이 심각하지만 완전한 무방비 상태는 아니다"라며 "쿠바군은 베네수엘라군보다 훈련이 잘 돼있고 장비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와 달리 쿠바는 미국 본토와 불과 140여㎞ 떨어져 있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서 액시오스는 쿠바가 군용 드론 300대를 확보해 관타나모 기지와 미 해군 함정, 플로리다주 일부 지역 타격을 검토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남미 전문가 헬렌 야페 글래스고대 교수는 알자지라에 "(미국) 압박이 커질수록, 아바나에서는 '여기서는 누구도 항복하지 않는다(Aqui no se rinde nadie)'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쿠바가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다는 관측도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쿠바군은 냉전기 20만여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소련제 최신형 전투기와 호위함을 보유했으나, 현재는 병력 4만명 안팎과 구형 전투기 수대, 소형 해안경비정을 간신히 운용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쿠바 정부도 '드론 300대 확보' 보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카를로스 말라무드 엘카노왕립연구소 연구원은 알자지라에 "쿠바가 베네수엘라보다 미국 억지에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인도주의적 위기가 결국 방어태세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쿠바 위기는 사실상 말기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전문가도 "쿠바군은 낡았고, 미국에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쿠바가 베네수엘라보다는 어려운 표적이지만, 이것은 전투력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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