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NN 창립자, ‘루이체 치매’ 투병 테드 터너 별세…향년 87세(종합)

기사등록 2026/05/07 01:36:14

“1980년 CNN 설립해 TV 뉴스에 혁명 일으킨 미디어계 혁신가”

자선가·핵 폐지활동·환경론자로도 활발한 활동

톰슨 CNN 회장 “테드는 CNN의 정신적 지주”

[서울=뉴시스] 미국 애틀랜타 CNN 방송국의 조종실에 서 있는  테드 터너 CNN 창립자. (출처: CNN) 2026.05.0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美 CNN 창립자이자 케이블 TV 뉴스 개척자인 테드 터너가 87세로 별세했다고 CNN 등 미 언론이 6일 보도했다.

1980년 CNN을 설립해 TV 뉴스에 혁명을 일으킨 미디어계의 혁신가이자 자선사업가인 테드 터너가 6일(현지 시각)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터너 엔터프라이즈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고 CNN은 보도했다. 향년 87세.

◆ CNN 창립 공로, 1991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 

오하이오주 출신의 애틀랜타 사업가인 그는 솔직한 성격으로 ‘남부의 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케이블 최초의 슈퍼스테이션과 인기 영화 및 만화 채널,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같은 프로 스포츠 팀을 아우르는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다고 CNN은 소개했다.

터너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요트 선수이자 유엔재단을 설립한 자선가로 전 세계 핵무기 폐지를 위해 노력한 활동가이자 환경 보호론자이기도 했다.

그를 진정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전 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24시간 내내 전달하겠다는 그의 대담한 비전이었고 그의 아이디어는 마침내 실현되었다.

1991년 터너는 ‘사건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150개국 시청자들을 역사의 생생한 목격자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터너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타임 워너에 매각하고 사업에서 손을 뗐지만 CNN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해서 표현하며 CNN을 자신의 ‘인생 최고의 업적’이라고 불렀다.

CNN 월드와이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톰슨은 성명에서 “테드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리더였으며, 용감하고 두려움 없이 항상 직감을 믿고 자신의 판단을 따랐다”고 말했다.

톰슨은 “테드는 CNN의 정신적 지주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우리가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거인이며, 오늘 우리는 모두 그의 삶과 세상에 미친 영향력을 기리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80번째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터너는 진행성 뇌질환인 루이체 치매(DLB)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에는 가벼운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재활 시설에서 회복했다.

터너는 다섯 자녀와 열네 명의 손자, 그리고 두 명의 증손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 초기에 뉴스 관심없던 터너 “TV 통한 다양한 뉴스로 세상 구할수도” 

터너는 24세에 아버지의 자살 이후 아버지의 옥외광고 회사인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을 물려받으면서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남의 제품을 홍보하는 일에만 만족하지는 않고 라디오 방송국들을 사들인 후 1970년에는 애틀랜타의 경영난에 시달리던 채널17을 인수하며 텔레비전 사업으로 확장했다.

그는 옛 시트콤과 고전 영화를 방영하며 시청률을 높이려 했다.

터너는 당시 뉴스에는 관심이 없어 스포츠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 경기 중계권을 사들였다.

시청자와 광고주들이 채널로 몰려들었고,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터너는 TV 사업의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76년 채널 17의 신호를 위성으로 송출했고 이는 케이블 TV 최초의 슈퍼스테이션이 되어 전국 케이블 가입자들에게 방송을 송출하게 되었다.

그는 슈퍼스테이션 WTBS를 구축하면서 더욱 높은 목표를 세웠는데 바로 24시간 뉴스 채널이었다.

방송 TV와 주류 언론의 뉴스 판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터너는 텔레비전보다 다양한 의견을 전파하기에 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고 뉴스 채널을 통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고 CNN은 전했다.

그는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뉴스가 이미 끝난 상태여서 TV 뉴스를 전혀 보지 못했다”며 시간 제약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텔레비전 뉴스의 범위도 비즈니스, 건강, 스포츠 등으로 획기적으로 넓히고자 했다.

◆ 1980년 CNN 창립 후 확장일로

 테드는 자신이 뉴스 사업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인정했지만 CNN의 창립 사장인 리즈 숀펠드처럼 뉴스 분야에 정통한 적임자들을 영입했다.

1980년 6월 1일, 최초의 24시간 뉴스 채널 CNN이 방송을 시작한 뒤 빠르게 확장했다.

1982년 두 번째 24시간 뉴스 네트워크인 CNN2(이후 헤드라인 뉴스, HLN으로 개명), 1985년에는 전 세계에 방송하는 CNN 인터내셔널을 추가했다.

이후 터너 네트워크 텔레비전(TNT), 터너 클래식 무비(TCM), 카툰 네트워크 등 뉴스 외 케이블 채널도 추가했다.

1980년대 중반 MGM이 보유한 4000편 이상의 고전 영화 라이브러리를 인수했고, ‘카사블랑카’ 등 많은 흑백 영화를 컬러화해 영화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10년간 CNN 방송국 소파에서 생활…페르시아만 전쟁, CNN 첫 ‘전쟁 생방송’

CNN은 테드에게 CNN은 언제나 ‘반려 동물’과도 같았다.

그는 “20년 동안 사무실에서 살았다”며 “처음 10년 동안은 사무실 소파에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오랜 직원들은 터너가 목욕가운을 입고 뉴스룸으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던 모습을 기억한다.

CNN의 전 사장 톰 존슨은 “그는 가운 차림으로 하드 뉴스 카페(회사 구내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1990년 페르시아만 전쟁이 발발했을 때 24시간 뉴스 채널의 중요성이 명확해졌다. 전쟁이 생중계된 것은 그때가 처음으로 오직 CNN만이 그 방송을 내보냈다.

터너는 1996년 자신의 방송 네트워크들을 타임 워너에 약 75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는 타임 워너의 부회장으로 남아 회사의 케이블 TV 네트워크를 이끌었다.

◆ 아버지의 자살로 광고판 회사 이어받아

테드 터너, 즉 로버트 에드워드 터너 3세는 1938년 11월 19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부모님은 어린 테드를 기숙학교로 보냈는데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터너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죽끈이나 철사 옷걸이로 아들을 체벌하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후 가족은 조지아주 서배너로 이사했고, 그의 여동생 메리 진은 12살 때 희귀 루푸스에 걸렸다. 이 병으로 그녀는 뇌 손상을 입었고, 사망할 때까지 수년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어머니도 사망 전 5년 동안 병을 앓아 터너는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터너는 남부의 엄격한 군사학교 몇 곳에 보내졌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하버드에 합격하기를 바랐다.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고전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반대하며 학비를 보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네가 왜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어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어로 누구와 소통하겠다는 거냐?”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은 점점 멍청이가 되어가는 것 같으니, 그 더러운 환경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나에게 더 좋을 겁니다."

그는 돈이 떨어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조지아주 메이컨에 있는 아버지의 광고판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터너는 1963년 3월 5일, 아버지가 서배너 인근 자택 2층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겨우 24살이었다.

당시 아버지 터너는 술과 약물에 취해 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400만 달러를 들여 자신의 회사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을 남부 최대 규모의 광고판 회사로 확장한 것이 무리였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 배우 제인 폰다와 결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로

두 번 이혼하고 다섯 명의 성인 자녀를 둔 터너는 경력의 정점에 있던 1989년 배우 제인 폰다와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91년에 결혼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 중 하나가 되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두 사람이 전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몇 달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보기로 결심했고,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 중 하나로 발전했다”고 생전에 말했다.

테드와 제인은 10년 동안 함께 살았고, 헤어질 때 테드가 제인의 기독교 개종에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사실은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제인은 더 이상 테드의 과장된 성격에 휩쓸리거나, 그가 소유한 28채의 부동산을 오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다녀야 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CNN은 전했다.

그녀는 60세를 바라보고 있었고, 더 이상 여행 가방 하나 들고 다니는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 제인 폰다와 헤어지며 미디어 제국도 무너져

그녀가 떠났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결혼 생활이 파탄나면서 터너의 미디어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타임 워너는 닷컴 붐 시대에 기존 미디어 기업이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합병을 통해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며 2000년에 인터넷 제공업체인 AOL에 인수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인터넷 거품은 2001년에 붕괴되었고, 이듬해 새롭게 합병된 AOL-타임워너는 99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손실을 입어 수많은 인원 감축을 초래했다.

터너는 2003년 AOL 타임 워너의 부회장직에서 사임했고 3년 후 이사회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터너 브로드캐스팅, CNN,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호크스의 경영권을 잃었고, 대부분 회사 주식으로 구성된 그의 재산은 3년 만에 7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헤어졌음에도 제인과 터너는 항상 친밀한 우정을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의 자선 행사에 참석했다.

터너는 자신이 많은 사람을 사랑해 봤지만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적은 두 번뿐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은 제인, 다른 한 번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와였다고 했다.

◆ 미디어 재벌에서 자선사업가로 변신

터너는 예전부터 자선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1997년, 터너 브로드캐스팅을 타임 워너에 매각한 이듬해에 유엔에 1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2001년 AOL과의 합병 이후 재산이 크게 줄어들면서 약속 이행에는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결국 2015년에야 유엔에 마지막 기부금을 전달했다.

그는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토지 소유주였다.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캔자스, 몬태나, 뉴멕시코,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19개의 목장을 비롯해 아르헨티나까지 28개 부동산에 걸쳐 2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땅을 소유했다.

그의 레스토랑 체인인 테드스 몬태나 그릴은 2002년에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16개 주에 4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멸종 위기에 처했던 들소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으며, 약 5만 1000마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소유 들소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다섯 자녀는 모두 터너 재단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 외에도 유엔 재단, 핵 위협 방지 이니셔티브, 캡틴 플래닛 재단, 터너 멸종 위기종 기금 등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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