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병·폐암 공포'에 병드는 급식실…산재는 여전히 '높은 벽'

기사등록 2026/05/03 08:00:00 최종수정 2026/05/03 08:18:24

연골 파열에도 '복잡한' 산재 대신 실비로

10년 미만 경력 폐암 산재 인정률은 4.6%

인력난까지 겹쳐…환기구 개선도 지지부진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죽음의 학교 급식실 폐암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대통령실에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2025.06.24.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튀김 솥 앞에 서면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요. 매캐한 연기에 목은 따끔거리고, 편두통은 며칠씩 가죠.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서 그거 하나로 버티는 겁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중학교 급식실. 이곳에서 4년째 아이들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조리원 양모(50대)씨의 하루는 쉼 없는 사투다. 3명의 동료들과 8시간 내내 370명분의 식사를 차려내는 동안 양씨가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물은 없다.

조리실엔 정수기조차 없어 아침에 끓여둔 물이 떨어지면 수돗물로 타는 목을 축여야 한다.

3일 뉴시스가 만난 양씨는 "어지럽고 숨이 답답해도 그저 버틸 뿐"이라며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환경을 여실히 보여줬다.

◆연골 파열됐지만…복잡한 산재 대신 실비로

현장의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최근 양씨는 잔반통을 옮기던 중 손가락이 꺾여 연골이 완전히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진단은 전치 4주였으나 인력이 부족한 탓에 연휴를 껴 3주만 쉬기로 했다.

무거운 식자재와 조리 도구를 다루는 것이 일상인 탓에 손목터널증후군과 손가락 석회 증후군 등 각종 골격근계 질환을 달고 산다. 연간 병원비만 400만원에 달하지만, 이번 부상 역시 복잡한 산재 신청 과정 탓에 개인 실손보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매캐한 조리 연기 역시 몸을 갉아먹는다. 양씨는 "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더니 성대결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기름 연기 영향이 없겠느냐고 물으니 의사도 부정하지 않더라"라고 토로했다.

◆조리흄으로 '폐암' 공포까지…10년 벽에 막힌 산재

조리원들에게는 양씨처럼 근육과 뼈가 망가지는 문제뿐 아니라 폐 질환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원인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와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복합체인 '조리흄(Cooking Fume)'이다. 튀김이나 볶음 요리 시 기름이 타면서 나오는 이 발암성 안개는 밀폐된 조리실 내에 머물며 조리원의 폐로 직접 스며든다.

지난 1월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조리원의 적정 식수 인원 기준을 정부가 마련하도록 명시하는 등 제도적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산재 인정 문턱이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의 이른바 '10년 기준'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학교비정규직노조가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2025년 4월 기준)에 따르면 폐암 산재 승인 175건 가운데 근무 경력이 10년에 못 미치는 경우는 4.6%(8건)에 그쳤다. 사실상 10년 이상 근무 이력이 없으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지난 3월, 폐암 발병 후 7년 미만 경력을 이유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서울의 한 급식실 조리원이 행정 소송을 진행하던 중 끝내 생을 마감했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근로복지공단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사이다 보니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10년보다 짧은 7~8년을 일했더라도 대량 조리 과정에서 노출되는 유해물질의 강도는 치명적인 만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위험해서 안 할래" 인력난 악순환… 환기 시설도 '지지부진'

위험하다는 낙인이 찍힌 급식실은 이제 인력난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했다. 정혜경 의원실에 따르면 2025년 전국 학교 급식실 신규 채용 미달률은 28.4%에 달하며 서울의 경우 87.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씨는 "우리 학교도 작년 9월에야 겨우 인원이 채워졌지, 그전엔 계속 알바생으로 버텼다"며 "알바생들은 아무래도 과중한 업무를 맡기기 어렵다 보니 결국 남은 사람들이 그 짐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작업 환경 개선도 더디기만 하다. 조리흄을 해소해야 할 전국 학교 급식실의 환기 시설 개선율은 41%에 그치고, 그마저도 개선 완료 학교 중 17.9%는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서울의 경우 77%가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

◆"식판 비워질 때 큰 보람…오래오래 일하고파"

2021년 첫 폐암 산재 승인 이후 4년여간 누적 신청은 213건, 승인 178건. 그 사이 1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리 방식 개선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그럼에도 양씨는 이 일을 놓지 못한다. "아이들이 식판을 싹 비우고 '맛있었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양씨는 "가능하다면 오래 일하고 싶다"며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병들지 않고 아이들의 밥상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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