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지연 책임 못 피한다"…대법, 신탁사 책임한정특약 또 제동

기사등록 2026/04/26 09:00:00 최종수정 2026/04/26 09:12:25

입주 3개월 지연 따른 분양대금 반환 청구 소송서

신탁사 분양계약서 '책임한정특약' 거듭 무효 확인

대법원 "약관법상 설명 의무 지켜야 할 중요 내용"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부동산을 분양 받는 사람이 단순히 계약서에 서명한 것 만으로는 신탁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책임한정특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자유·평등·정의가 적혀 있다. 2026.04.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부동산 분양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신탁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책임한정특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입주 예정일이 석 달 넘게 지나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물어낼 처지가 된 신탁사가 책임한정특약을 근거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다퉜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최근 서울 금천구의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 상가의 분양권을 취득했던 A씨가 신탁사인 B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매매대금 반환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22년 3월 양수도 계약으로 해당 건물 상가 분양권을 취득했는데, 애초 예정일보다 3개월 이상 입주가 늦어지자 같은 해 11월 B사에 계약 해제와 위약금 지급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분양계약서상 입주 예정일은 2022년 7월이었다. B사의 귀책으로 이보다 3개월을 초과해 입주가 지연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이럴 시 A씨에게 분양대금 10%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조항도 있다.

양측은 소송을 택했다. A씨는 B사를 상대로 이미 납부한 총 분양대금의 절반인 1억967만원에 위약금을 합친 1억3160만원 상당의 배상을 청구했다.

B사도 남은 분양대금을 달라는 반소를 제기했다.

재판에서는 '책임한정특약'의 효력이 쟁점이 됐다.

오피스텔, 상가건물 등의 경우 시행사 등이 부동산을 신탁사에게 위탁해 분양을 진행하는 일이 있다.

신탁사들은 통상 분양계약서에 '자신이 위탁받은 재산 및 계약의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는 취지의 조항을 담는데 이를 책임한정특약이라 부른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서울 시내 한 상가에 임대 문의 광고물이 게시돼 있다. 2026.04.25. hwang@newsis.com
이번 사건의 계약에도 '분양해약금 반환, 입주 지연 시의 지연 배상금 책임 등 매도인으로서 발생하는 일체의 의무는 자신들이 아닌 위탁자인 C 주식회사가 부담하고, A씨는 B사에 분양계약과 관련해 손해 및 비용 청구를 하지 않는다'라는 특약이 있었다.

결론은 1·2심과 대법원 모두 A씨 승소였다. 분양계약서에 있는 대로 B사가 분양대금을 돌려줘야 하며 위약금까지 모두 물어낼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계약서 끄트머리에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했으며 동의 후 자필 기재한 것을' 옆 빈칸에 자필로 '확인합니다'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특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1심은 신탁법에 따른 '유한책임신탁'은 등기가 이뤄져야 하고 거래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서면으로 내줘야만 하는데 B사가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심도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은 매도인으로서 발생한 일체의 의무는 위탁자가 책임지며 A씨는 B사에게 손해 및 비용 청구를 못 하게 돼 있어 계약 해제 및 위약금 내용과 모순된다"라며 "계약서 필체만으로는 이런 내용을 설명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라고 했다.

대법원도 1·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책임한정 등 특약은 수탁자(B사)의 수분양자(A씨)에 대한 채무 이행책임을 신탁재산의 한도 내로 제한하거나 면제하는 것"이라며 "관련 법에서 정하는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판시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사업자는 약관에 정해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어기면 그 조항은 계약된 내용이라 주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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