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만 보던 내가 눈을 맞춘다"…악몽 같은 '10년 은둔' 극복기[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⑧]

기사등록 2026/05/08 07:00:00 최종수정 2026/05/08 07:28:24

책상엔 욕설, 뒤에선 지우개…멈추지 않은 따돌림

우울증 커뮤니티→센터 연결…"비슷한 경험 힘 돼"

[서울=뉴시스]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비영리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센터장 김옥란)에서 일하는 송경준(30)씨. (사진=㈔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제공) 2026.04.3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조수원 기자 = <2부:사회서 고립된 은둔청년>

송경준(30)씨의 고립은 교실에서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이유는 없었다. 서 있으면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갔고, 뒤에서는 지우개가 날아왔다. 책상 위에는 네임펜으로 욕설과 음담패설이 적혔다. 전자사전은 빼앗겨 망가졌다. 그는 "소심하고 체력이 약한 모습을 보고 괴롭힘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괴롭힘은 학년이 바뀌어도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내내 지속된 따돌림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이어졌고, 결국 그는 자퇴를 택했다. 이후 재수학원을 거쳐 대학도 진학했지만 대인공포와 공황 증상으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군 복무 역시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 야간 공익으로 이어지며 고립은 심화됐다.

그의 삶은 점점 '방 안'으로 좁혀졌다. 낮에는 일하는 부모를 피해 거실로 나가고, 밤에는 다시 방으로 숨었다. 외출은 2주에 한두 번, 그것도 밤뿐이었다.

"친구도 없고, 굳이 나갈 이유도 없었다. 살아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변화는 온라인에서 시작됐다.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한 공동생활 프로그램 공고를 발견한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하나로 지원했다.
 
2020년, 스물 다섯.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시작한 공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입소 직후 공황 증상이 악화돼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일상은 조금씩 그를 바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 그리고 공동생활, 갈등을 겪고 사과하고 다시 관계를 맺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갔다.

"처음에는 밥을 먹을 때도 접시만 봤는데, 점점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됐다."

1년 반 뒤, 그는 같은 센터에 취업했다. 현재 간사로 행정과 프로그램 운영을 맡으며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고립·은둔청년을 돕고 있다. 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해 올해 졸업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사회복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송씨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센터 덕분이었다.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삶에 희망도 생겼다. 그는 "예전에는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면, 지금은 조금씩 희망이 생긴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고립·은둔청년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고 했다. 송씨는 "팔다리 멀쩡한데 왜 방에만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왜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 "예전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서울=뉴시스]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비영리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2024 국제국민마라톤'에 참여해 함께 달리고 있다. (사진=㈔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제공) 2026.04.30. photo@newsis.com

◆"회복은 진행형"…작은 변화가 쌓여 밖으로

다른 청년들의 변화 역시 '천천히' 이뤄졌다.

유혜원(34)씨는 고립·은둔청년 지원 기관을 다니며 가장 먼저 외출 빈도가 달라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그는 프로그램 참여 이후 주 4일 이상 외출하며 일상을 회복해갔다.

상담과 약물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줄었다. 유씨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센터에 들어오고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됐다. 호불호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다"고 했다.

김호진(가명·36)씨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원 기관과 연결됐다. 그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김씨는 운동과 상담을 병행하며 일상을 회복 중이다.

다만 회복 과정은 더디기만 했다. 유씨는 새로운 인간관계 속 갈등으로 위축되기도 했고, 김씨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완전히 회복됐다기 보다 여전히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중간 지점'이었다. 김씨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도 힘들고,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것도 어렵다"며 "그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비영리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의 김옥란 센터장. (사진=㈔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제공) 2026.04.30. photo@newsis.com

◆전문가 "결국 핵심은 사람…공간은 있지만, 지원 인력 부족"

전문가들은 고립·은둔청년 문제를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장은 "학교폭력, 우울, 취업 실패, 가정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며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가족 책임론을 경계했다. 김 센터장은 "센터에 오는 청년들 대부분은 사회로 나가고 싶어하지만 갈 곳이 없는 상황이고, 이미 부모의 역할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만큼 가족 내부에서 풀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지속적인 관계'를 꼽았다. 김 센터장은 "여러 청년 정책은 공간만 있고 이를 채워줄 인력이 부족하다"며 "한 사람이 청년 50명 이상을 케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담 인력의 잦은 교체 역시 문제로 짚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부모 역할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멘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학업과 취업, 또래 관계 형성까지 도움과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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