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 약물 관련 세미나 자료 공개
"여성 마약 통계, 실제 규모 반영 못해…낙인 때문"
"같은 약물 사용해도 여성이 더 빠르게 영향 받아"
사회·문화적 조건 강조…"외모가 경쟁력인 사회"
[서울=뉴시스]박정영 기자 = #. A씨는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A씨는 실기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목표를 이뤘지만 A씨는 계속해서 공허함을 느꼈다. 그때 접한 것이 바로 다이어트 약물이었다. 처음에 친구의 권유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나중에 수면 장애로 힘든 시간을 겪게 됐다. A씨는 결국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대출까지 감행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 B씨는 고등학생 때 남자친구들이 자신의 몸과 다리 일부를 몰래 촬영하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B씨에게 '남의 아들 인생 망칠 일 있냐'며 가해자를 두둔했다. 이처럼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B씨는 재수를 하면서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대마초를 시작했다. 그리고 펜타닐을 사용하는 남성 판매자를 만나게 됐다. 이 남성은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B씨에게 펜타닐 판매를 통해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했다. 남성의 계속된 폭언과 폭력에 B씨는 결국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했다.
최근 10년간 여성 마약 사범이 5배 가까이 증가한 가운데, 친밀 관계 내 폭력이 중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12월 16일 진행했던 '약물을 둘러싼 여성들의 경험, 젠더 관점으로 보기' 세미나의 발표자료를 지난 21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서 최미경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약물에 연루된 여성들'을 주제로 설명했다.
24일 대검찰청의 '2024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여성 사범은 2014년 1378명에서 2024년 6463명으로 4.7배 증가했다. 또한 전체 사범 중 여성의 비율은 2014년 13.8%에서 2024년 28.1%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대해 최 연구교수는 "여성은 2~3년 정도 마약류를 사용하다가 부모나 주변 지인에게 발견되면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수치는 실제 규모를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하며, 현실에는 이보다 더 많은 여성이 존재한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의 약물 사용 사실이 자녀나 남편에게 알려질 경우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낙인의 문제도 있다"며 "치료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마약류를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총 세 가지로 나눈다.
이 중 향정신성의약품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 이를 오·남용할 경우 심한 신체적·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을 말한다.
최 연구교수는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해 "실제 현장에서 만난 중독자 중에서는 다이어트 약물이나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한데 합법적인 약물일수록 오히려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접근도 쉬워서 오·남용이 쉽다"고 말했다.
또한 최 연구교수에 따르면 같은 양의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여성은 더 빠르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최 연구교수는 "예를 들어 1g의 필로폰이 들어갔을 때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지만 여성은 바로 약물에 반응하게 된다"며 "체지방 비율, 불안이나 우울 등 심리·정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문화적 조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최 연구교수는 "A씨와 B씨의 생애사를 보면 남성들의 통제와 폭력이 개입돼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폭력성이나 무관심, 이를 참고 넘어가는 어머니의 태도 속에서 딸은 내면의 상처로 입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의 경우 외모와 몸이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약물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는 여성들이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연구교수는 여성 맞춤형 치료체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 연구교수는 "지금의 약물 치료 모델이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라며 "여성의 특성과 취약성을 충분히 반영한 맞춤형 접근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여성의 약물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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