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열려도 이전으로 못 돌아가"…에너지 공급망, 이미 대전환

기사등록 2026/04/22 11:23:28 최종수정 2026/04/22 12:44:24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에 우회 인프라·대체 공급 가속

"공급망 전환에…해협, 2030년엔 중요도 낮아질 것"

효율 대신 안정성 선택…유가·에너지 비용 상방 압력

[서울=뉴시스] 2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 각국은 해협을 우회하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2026.04.22.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된다 하더라도 글로벌 에너지 업계는 더 이상 과거처럼 이 수로에 의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에너지 공급망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적 변화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2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 각국은 해협을 우회하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 연료를 수입하는 국가들도 다른 공급원 확보에 나섰고, 석탄 등 대체 에너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바드르 자파르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특사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드론 공격이 시작된 순간부터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미 수년 전 구축한 송유관을 가동해 생산 원유 상당 부분을 해협 밖 항구로 실어 나르고 있다. 이라크도 최근 정치·군사적 갈등으로 중단됐던 튀르키예행 송유관 가동을 재개하며 대응에 나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우회 경로를 통한 원유 수출량은 하루 700만 배럴을 웃돌며, 전쟁 이전(400만 배럴 미만)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다만 이는 전쟁 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하루 2000만 배럴에 비하면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은 이러한 우회 송유관도 큰 해법이 되지 못한다.
[워싱턴=AP/뉴시스] 2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 각국은 해협을 우회하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4.22.

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핵심 요인은 통행권이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최근 이란 외무장관의 해협 개방 시사로 국제 유가가 9% 급락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항구 봉쇄 유지 방침을 밝히고 화물선까지 나포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이란·베네수엘라 특사를 지낸 엘리엇 에이브람스는 "2030년이나 2035년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라며 "시장은 결국 대안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사우디와 UAE의 기존 송유관·저장시설·항만을 확장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대부분의 걸프 국가들은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다른 해안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라크는 시리아를 거쳐 지중해로 연결되는 신규 송유관 건설을 검토 중이나, 과거에도 유사 프로젝트는 정치적 갈등으로 번번이 좌초됐다. 1980년대 건설된 이라크-사우디-홍해 송유관 역시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

현재 대안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라크는 지난달 하루 약 30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두바이 기반 컨설팅업체 카마르에너지의 로빈 밀스 CEO는 "지도 위에선 쉽게 선을 그을 수 있지만 이를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비용도 걸림돌이다. 인프라 구축에 수백억 달러가 소요될 전망이지만, 전문가들은 '리스크 비용'이 이를 정당화한다고 본다. 밀스 CEO는 "현재와 같은 공급 혼란이 한두 달만 지속돼도 투자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수입국들도 페르시아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하거나 원전 재가동 검토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이지 않고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효율성'보다 '안정성'을 택한 대가는 적지 않다. 복잡한 우회 경로와 고비용 에너지로 인해 소비자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스펜서 데일 전 BP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취약해졌다"며 "지정학적 충격에 대비해 에너지 시스템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그 과정에는 반드시 막대한 비용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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