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20% 통로 차단…협상 지렛대로 부상
美 해상 봉쇄 맞불에도 '버티기'…중동 긴장 고조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수십 년간 이란의 '협박 카드'로 거론돼 온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하면서, 이는 역내 긴장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드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했다.
1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란 정권 내부 관계자는 이번 봉쇄 실행이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다"며 이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핵무기와 버금가는 지렛대'라고 평가했다.
정권 붕괴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목표로 전쟁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난관에 직면했다.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약 20%를 통과하는 해협이 막히면서 글로벌 경제에 즉각적인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군을 동원해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차단하는 '해상 봉쇄'로 대응했지만, 이란은 봉쇄가 계속될 경우 걸프만뿐 아니라 홍해와 오만만까지 교역을 차단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이란은 2주간 조건부 휴전 이후에도 해협을 재개방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공습한 것이 합의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해협 개방은 미국이 제시한 핵심 휴전 조건이었다.
이란 정치권은 해협을 향후 경제·외교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드러내고 있다. 의회는 통행료 부과와 '적대국' 선박 제한을 포함한 해상 규제 법안을 검토 중이며, 일부 의원들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러한 수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미드레자 하지 바바이 이슬람의회 제2부의장은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우리 최대의 지렛대"라며 "통제권을 쥐면 제재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해협 통제 시도는 전 세계에 우려를 낳고 있다. 전쟁 중 공격을 받았던 인접 국가뿐 아니라,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 등 주요 경제 교역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봉쇄로 이란이 향후에도 해협을 반복적으로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로 지목된다.
런던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HA 헬리어 연구원은 "이란은 비교적 적은 군사적 비용으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다만 그 대가로 걸프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는 크게 훼손됐고 회복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 문제는 이란 핵 협상과 함께 미·이란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주말 파키스탄 중재로 이뤄진 평화 협상은 성과 없이 종료됐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협상이 "향후 며칠 내" 재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 이란에 일정 수준의 해협 통제권을 허용하는 합의를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2주 내 원유 생산을 대폭 줄여야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이란이 2주 내 원유 생산을 대폭 줄여야 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미국보다 더 높은 '버티기 능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국내 경제 충격을 억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내부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 호르무즈 해협을 핵심 협상 카드로 유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강경 성향 평론가 포아드 이자디는 "호르무즈 해협 관리만으로도 미국의 압박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혁 성장의 정치경제학자인 마지드 호세이니 테헤란대 교수는 "이란이 쉽게 해협을 재개방할 가능성은 낮다"며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억지력이고, 권력층의 최우선 과제는 이 '호르무즈 카드'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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