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참사 12년…살아가는 우리는 죄송할 따름"

기사등록 2026/04/16 13:50:08 최종수정 2026/04/16 14:00:28

세월호 참사 12주기, 추모객 모여드는 진도 팽목항

목포신항서도 녹슬어가는 세월호…"참사 아픔 여전"

[진도=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러 온 추모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2026.04.16. photo@newsis.com
[목포·진도=뉴시스]이영주 기자 = "살아가는 우리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차디찬 맹골수도에 삼켜진 단원고 학생들이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항구에는 이날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노란 추모 깃발이 빛바랜 채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12년 전 팽목항을 가득 메웠던 비탄과 통곡의 자리는 참사의 기억을 곱씹는 추모객들의 발걸음과 깊은 한숨으로 채워졌다.

추모객들은 이날도 붉어진 눈시울처럼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방파제 끝 등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대 앞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국화꽃을 바라보며 숙연해진 이들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먹빛 바다가 만들어낸 높은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는 소리만이 무거운 침묵을 깨며 12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아픔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팽목항 주변 팽목기억관에서도 서글픈 추모 분위기는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희생자 304명의 영정이 걸린 추모관에서 고개를 숙였다.

방명록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애도의 글귀가 빼곡히 적히며 참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했다.

딸의 손을 잡고 추모하러 온 한 어머니는 단원고 학생들의 영정 앞에서 통곡한 뒤 헌화했다.

이후에도 슬픔이 가시지 않는 듯 한동안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죽여 울음을 토해냈다.

[목포=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서 한 추모객이 파손된 선체를 바라보고 있다. 2026.04.16. photo@newsis.com
같은 시각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도 12년 전의 아픔을 떠올리며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벌겋게 녹이 슬고 나무껍질처럼 벗겨진 선체를 바라보며 목구멍 깊숙이 탄식을 삼켰다.

낡고 녹슨 배가 세월호였음을 보여주는 선수 부분의 표식 'SEWOL'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세월호 주변 철조망에 내걸린 노란 리본과 열쇠고리 역시 바닷바람에 변색되거나 해지며 12년의 세월을 실감케 했다.

추모객들은 저마다 참사와 관련된 기억을 꺼내며 아픔을 달래거나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전남 순천에서 팽목항을 찾은 김은화(49·여)씨는 희생된 학생들을 볼 때마다 딸이 떠오른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내 딸도 세월호 참사가 났던 그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었다. 딸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숨진 자녀들의 부모는 12년 내내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라며 "우리 모두의 책임인데 그들만 고통을 안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남아 있는 자로서 죄송하다"고 서글퍼했다.

추모객 서창범(51)씨는 "전원 구조 오보 등 처음 참사를 접했을 때의 아픔이 여전히 생생하다.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며 "안전에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며 12년째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일호(60)씨도 "진상규명이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생각한다. 참사 당일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며 "참사의 진실은 이제 제대로 말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와 함께 목포신항을 찾은 김재삼(45)씨는 "살고 있는 곳이 진도군 조도로 사고 해역과 가깝다. 선체나 팽목항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며 "매년 세월호 참사 주기가 다가오면 목포신항이나 팽목항을 찾는다. 12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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