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물량 이번 주 끝"… 아시아발 공급 충격 서방 확산
포티스 브렌트 현물가 149달러 돌파…2008년 금융위기 수준 넘어
필리핀 비상사태·호주 비축유 방출…UNDP "3250만명 빈곤 위기"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전격적인 해상 봉쇄를 단행한 가운데, 전쟁 발발 직전 해협을 통과한 마지막 유조선들이 수일 내 정유시설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을 기점으로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시장에서 실물 원유 부족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월 28일 전쟁 발발 이전 해협을 통과한 마지막 선박들이 20일까지 말레이시아와 호주 등에 도착할 예정이다. JP모건에 따르면 미국으로 향하던 전쟁 이전 물량은 이번 주 내로 종료되며, 덴마크는 지난 주말 쿠웨이트산 항공유 마지막 물량을 수령했다.
문제는 아시아 정유사들이 중동발 공급 차질에 대비해 통상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던 원유 물량까지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서방 시장으로 들어올 공급이 줄면서, 유럽과 미국 역시 곧 원유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애널리스트 닉 다이어는 "아시아가 확보한 물량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약 한 달 내 서방 시장에도 충격이 나타날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 정유사들도 다음 달부터 가동률을 낮추며 부족분을 분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전 아시아로 향하던 물량은 대부분 4월 1일 전후로 끊겼으며, 이번 주 이라크산 원유 일부가 말레이시아로 향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 호르무즈 봉쇄 여파 본격화…유가·연료·빈곤 '연쇄 충격'
공급 긴장 신호는 현물 시장에서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시 인도 가능한 원유 가격이 선물 가격을 크게 웃도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북해산 원유인 포티스 블렌드는 이날 기준 배럴당 149달러에 근접해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는 약 1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선물과의 이례적인 격차로, 정유사들의 원유 확보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음을 보여준다.
JP모건 원자재 전략가 나타샤 카네바는 "유럽과 아시아 정유사들이 남은 물량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현물 브렌트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탈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 패트릭 푸얀네는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항공유·디젤·LNG 등 일부 에너지 제품에서 심각한 공급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항공편 운항 제한이나 연료 배급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필요 시 추가 전략비축유 방출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IEA 회원국들은 이미 4억 배럴 규모의 비상 비축유 방출을 약속한 상태다.
피해는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집중되고 있다. 중동 의존도가 95%를 넘는 필리핀은 휘발유 가격이 두 배로 급등하자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재택근무를 권고했으며, 호주는 18일 마지막 중동산 원유 도착을 앞두고 비축유 방출과 연료세 인하, 국가 연료안보 계획을 시행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번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공급 부족·식량 가격 상승·경기 둔화 등 '삼중 충격'으로 최대 3250만 명이 빈곤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onl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