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늙은 지브리 거장은 또 연필을 들었다

기사등록 2026/04/13 05:58:00

다큐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 개봉하기까지 2399일 간 기록을 담았다. 말하자면 이 다큐는 애니의 별책부록. 약 6년 6개월에 걸친 시간을 120분 분량으로 요약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와 캐릭터와 메시지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탄생했으며 무엇으로 발전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다만 앞서 20여년에 걸쳐 미야자키 감독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 만든 적 있는 아라카와 카쿠 감독은 새 작품을 제작기 정도로 남길 생각이 없다. 이건 인생 황혼기에서 삶을 돌아보며 긴 세월을 함께 건너온 동료들을 간절히 기리는 노인의 이야기다. 동시에 자력으론 도저히 꺼트릴 수 없는 어떤 혼을 또 한 번 불사르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지에 다가가기 위해 수백 수천번 깎고 또 깎는 장인(匠人)의 이야기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23년 12월 NHK에서 방송한 특집 다큐에 각종 미공개 영상을 등을 더해서 재편집해 이듬해 3월에 나온 확장판을 영화화했다. 새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작업 과정과 일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다큐를 보면 난해해 보였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물론이고 그의 전작들이 미야자키 감독의 삶과 생각과 태도에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노인·예술·장인이라는 이 영화의 키워드는 미야자키 감독의 말이기도 하다. 그는 수십년 함께해온 동료들을 하나 둘 보내며 말한다.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 수 차례 은퇴를 얘기했고 2013년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한 적도 있는 그는 또 새 영화를 시작하며 "영화에 목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뇌의 뚜껑을 더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원하는 선이 도저히 그어지지 않는다"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늙었고, 친구들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예술가로서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데 마음은 새로운 걸 계속 갈망하며, 체력은 예전 같지 않은데 선 하나를 허루투 그릴 수 없는 성격은 좀처럼 눈치를 보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미야자키 감독은 서럽고 슬프고 그립고 그러면서도 위엄과 품위와 기세를 좀처럼 잃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다. 그러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유독 무겁고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

아라카와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캐릭터·대사·장면과 교차하는 동시에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들을 하나 씩 겹쳐가며 그의 삶과 예술을 그러모은다. 지브리스튜디오 공동 창립자이자 미야자키 감독의 일생을 함께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말한다. "감독님에게는 영화 속 세계가 곧 현실이죠. 현실이 곧 영화고요." 그리고 미야자키 감독은 말한다. "내 머리가 고장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보면 미야자키 감독의 걸작들 속 대사가 머리를 친다. '붉은돼지'(1992)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녀석들은 모두 죽었어."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선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야. 그건 엄청난 굴욕이지." 또 '마녀 배달부 키키'(1989)에선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있어. 그럴 땐 미친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라고 했고, 결국 미야자키 감독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너만의 탑을 쌓아라. 풍요롭고 평화로온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라."

한편으로 이 다큐는 젊은 예술가 혹은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지침이 돼 줄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은 영감(靈感)이 아니라 노동이다. 오스카를 두 번이나 받은 이 위대한 예술가는 일한다. 매일 일한다. 되든 안 되든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한다.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다시 일한다. 한 장도 그리지 못하는 날이 있다. 몇 달 간 아무것도 그리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좌절과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그는 사무원처럼 일하고, 끝까지 간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끝낸 뒤 이 작품이 정말 은퇴작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본 관객은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은퇴는 없다. 그는 은퇴하지 못한다. 아마도 당신이 이 다큐를 보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이 노인, 예술가, 장인은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산책한 뒤 책상 앞에 앉아 끙끙 대면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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