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자리를 지킨 벨로주가 있다…오래된 주인이 있다 '한결같은 사람'"

기사등록 2026/03/30 17:19:38

박정용 대표가 이끈 벨로주 홍대 18년 만에 영업 종료

강아솔·김목인·하림&패치워크로드 1부 페어웰 공연 현장

김사월·여유와설빈·황푸하는 2부 무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강아솔, 전진희. 벨로주 페어웰 공연 중. 2026.03.30.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몇 해가 지나가고 많은 일이 있었고 / 여기 그 자리를 지킨 벨로주가 있다 / 도심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 많은 시간들을 지켜본 곳 / 그 안엔 가게만큼 오래된 / 주인이 있다 / 아 이 한결같은 사람 ♪♬"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벨로주 홍대. '인디음악 생태계 다양성'의 상징인 이곳이 18년 만에 영업 종료를 앞두고 연 '페어웰 콘서트' 1부에서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은 애초 자기 순서 마지막곡으로 '한결 같은 사람'을 준비했다.

현 상황에서 박정용 벨로주 대표에게 바치는, 안성맞춤 가사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김목인 무대 직전에 1부 공연의 포문을 연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해당 곡을 듀엣으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 두 사람의 무대 브리지 역할을 하는 곡이 됐다.

이날 무대는 벨로주가 인디 음악가들에게 단순한 대관 공간 그 이상의 '연대 거점'이었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강아솔은 "3일 전부터 계속 긴장되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평소 공연 전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하며 멘트까지 녹음해 다시 듣고 콘서트 준비를 하는 그는 이번에 특히 할 말이 너무 많았다.

2012년 9월 네이버문화재단 '온스테이지' 일환으로 밴드 '원펀치'와 함께 한 무대가 자신의 첫 벨로주 공연이라고 기억한 강아솔은 이곳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관객과 음악가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회고했다.

특히 강아솔은 2021년 벨로주에서 '작은 언약식'을 맺었던 '절친' 싱어송라이터 겸 피아니스트 전진희를 깜짝 게스트로 초대했다. "마지막 날 함께하고 싶었지만 들어올 수 없었다"던 전진희 역시 "나의 시작도 벨로주였기에 감회가 새롭다"며 기꺼이 건반 앞에 앉아 강아솔과 '모두가 있는 곳으로' 합을 맞췄다. "함께 했었던 / 그 시간들이 / 홀로 걷는 나를 따라와 안아주었지 / 허무했던 외로웠던 / 그 마음 위로 / 자꾸만 흰 눈이 내리네"라는 노랫말은 벨로주의 시간과 중첩이 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목인에게도 벨로주는 성장의 기록이었다. 2011년 첫 음반 발매 공연을 이곳에서 열었던 그는, 밴드 해체 후 솔로로서 애매했던 시기에도 벨로주 무대에 줄곧 올랐다. 김목인은 "공연 후 밴드들이 그날 번 돈을 그냥 받아가던 시절, 벨로주가 세세하게 정산 내역을 보여줘 문화 충격을 받았다"며 "음악가들을 굉장히 존중해 줬고, 그런 태도가 지금은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고 짚었다.

벨로주의 연초 기획 공연 '새해의 포크'에 오랜 기간 참여하며 스스로 "고인물이 되는 것 같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려 쉬었는데 못내 아쉽다"고 털어놓은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늘 벨로주에서 발표하고 싶었다"고 애정을 표했다.

또 벨로주 공연에서 자주 틀렸는데 그 때마다 "사장(박정용 대표)님이 목인 씨는 틀려도 그냥 틀려도 된다고 하셔서 그게 무슨 뜻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다 같이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스윙 리듬의 '그게 다 외로워서래'를 열창했다.

1부 마지막을 장식한 싱어송라이터 하림과 패치워크로드의 무대는 벨로주라는 공간이 지닌, 뮤지션들의 가교로서 가치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이전에 친분이 있던 하림과 패치워크로드가 본격적으로 같이 공연하게 된 계기가 박 대표였다.

하림은 벨로주를 "모든 뮤지션들의 아지트이자 인큐베이팅 공간"이라 명명했다. 자신의 대표곡 '출국'을 박 대표에게 바치기도 한 그는 "18년이나 했으면 이제 쉴 때가 됐다. 좁은 이곳을 떠나 저 멀리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시는 상상을 했다"고 애정 어린 위로를 건넸다. 화려하게 살다 가는 매미에 벨로주를 빗대기도 한 하림은 "사라져서 영원히 남는 것들이 있듯, 우리가 벨로주에서 나눈 기억들이 영원 속에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팀 멤버들 개인의 역사도 벨로주와 단단히 엮여 있었다. 아일랜드 음악 밴드 '바드'의 시작과 해체를 모두 벨로주와 함께했던 박혜리는 "내 결혼식마저 이곳에서 올렸다"며 "생애 주기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을 함께 지났기에 마지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 어젯밤 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 역시 "대문자 T(이성적 성향)임에도 이번 주 내내 옛 생각에 잠겼다"며 "클래식만 하던 내가 혜리 누나, 하림 형을 만나 여러 나라의 음악을 시작한 곳"이라고 돌아봤다. 벨로주에서 가장 많이 공연한 뮤지션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벨로주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그저 편안했던 이유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맞아주던 사장님과 엔지니어, 직원분들이 만들어준 분위기 덕분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며 박 대표와 스태프들에게 깊은 감사를 덧붙였다.

같은 날 페어웰 공연 2부를 담당한 김사월·여유와설빈·황푸하도 벨로주와 인연이 깊은 라인업으로 각자 추억을 풀어놨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벨로주 페어웰 공연. 2026.03.30.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겨레문화센터, 라이코스, 네이버 등에서 기획자로 활동한 박 대표는 2008년 홍대 앞에 벨로주를 열었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뮤지션 카에타누 벨로주의 이름에서 공연장명을 따온 박 대표의 삶은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장르 음악 생태계에 크게 공헌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됐지만, 자신을 결코 앞세우지 않는 겸양의 미덕도 가지고 있다. 사람 좋은 미소와 만년 소년성으로 '홍대 앞 휴 그랜트'로 불린다. 벨로주 홍대도 그런 그를 닮았다. 아늑하지만 세련됐고,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웠다. 벨로주는 또한 인디 뮤지션들의 명함을 만들어준 '온스테이지', 홍대 앞 클럽의 활성화에 힘을 실은 '라이브 클럽 데이'(라클데)의 베이스 캠프 같은 곳이기도 했다.

강아솔, 전진희, 최고은, 선우정아, 이설아, 장들레 같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싱어송라이터들이 단독 공연을 열며 애정을 표한 공간이기도 했다. 아이돌 박지윤도 2017년 이곳에서 공연한 뒤 싱어송라이터로 각인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새해의 포크'로 주목 받았다. 박 대표는 앞서 이달 말 영업종료를 알린 해당 글에서 "벨로주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는 실패다. 뼈아프게 생각한다. 다만, 애초 이 공간을 만든 의미를 지켜왔느냐는 면에서는 성공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고,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썼다.

벨로주 홍대는 이름과 주인이 바뀌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공연장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간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생태계 다양성에 기여해 온 박 대표는, 이제 벨로주 망원에서 레코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간을 꾸려갈 예정이다.

다음은 벨로주를 아낀 세 명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꺼내놓은 벨로주에 대한 추억과 이곳에서 공연한 뮤지션에 대한 기억이다.

◆조혜림 음악 콘텐츠 기획자(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

"벨로주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 앞에서, 오랜시간 함께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낯선 음악이 처음으로 내 것이 되던 순간들, 작고 빛나던 무대 위의 떨림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봤고, 음악으로 연결됐다. 이제는 사라지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배운 감각과 마음은 오래 남아 나를 만든다. 고맙고, 미안하고, 오래도록 그리울 이름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공연은 이상의 날개 공연이다. 이상의 날개 비롯 슈게이즈 팀들이 함께 한 기획공연이었는데 이상의 날개의 아름다웠던 공연 그리고 그들의 영국 여행기가 담긴 미니 다큐멘터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들의 음악을 향한 사랑과 에너지가 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줬다."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대학생 시절 블로그로 아마추어 비평을 시작했을 무렵, 2009년 델리스파이스 김민규의 출판 기념회 초청 때 찾은 카페 시절 벨로주의 기억이 선명하다. 이후 공연장으로 전환하고 온스테이지 무대 시절을 지나며 내게 이곳은, 장르와 유명세를 가리지 않는, 음악가들을 위한 쇼케이스 무대로서 가장 믿음직한 공간이었다.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않은 음악이 관객과 처음 호흡하는 장면을 밀도 높게 보여준 공간이었다. 솔직히 하나를 꼽고 싶지 않지만 그중 단 한 음악가의 소리와 존재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던 박지하의 2집 발매 쇼케이스 무대를 고르겠다. 새롭고 좋은 음악을 먼저 추천해주던 믿음직한 절친이자 동료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한대음 선정위원)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시즌 1때 디어 클라우드의 공연이다. 내가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좋은 음악은 장르에 묶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 순간이었다. 벨로주의 의미는 좋은 사람이 만드는 좋은 공연의 가치와 매력을 알려준 공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는 음악가와 관객 모두 공연에 몰입했다고, 음악으로 하나된 힘으로 홍대 앞을 지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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