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악명 남긴 채 88세로 숨져

기사등록 2026/03/26 16:11:11 최종수정 2026/03/26 16:17:55

동부병원 장례식장 안치…27일 오전 발인 예정

"당시 간첩과 사상범 잡는 건 애국" 발언하기도

[서울=뉴시스]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씨(사진=뉴시스DB)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군사독재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향년 88세.

26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근안은 전날 사망했으며, 현재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상태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5시20분으로 예정됐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고문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과 옥살이 후유증을 앓다 지난 2011년 사망한 고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역시 1985년 9월 4일 '민청련 결성' 사건으로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으로부터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바 있다.

민주화 이후 그의 행적은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재조명됐다.

고문 의혹이 불거지자 1988년 수배됐고 약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가 관여한 공안 사건 가운데 일부는 이후 재심에서 조작 정황이 인정되며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근안의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간첩이라 허위 자백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어부 정규용씨도 2014년 38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서울대 무림 사건'과 관련해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2006년 출소 이후 이근안은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적으로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2012년 12월 14일 서울 성동구 한 식당에서 열린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며 "애국이 아니면 누가 목숨을 내놓고 일했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세월이 지나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그 바람에 가족들도 거지가 되다시피 살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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