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된 식습관이 주요 원인
식단만 바꿔도 치료 가능해
크론병은 원래 북미와 유럽에서 흔한 질환이었으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지난 20~30년간 발생률이 빠르게 늘면서 그 이유와 치료법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염증이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하며, 병변의 분포가 연속적이지 않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크론병으로 진단 받은 환자는 3만4614명으로 2020년(2만5476명) 대비 35.9% 늘었다. 이 가운데 0~19세가 3676명으로 전체의 16.7%를 차지했다.
크론병의 발병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면역 체계가 자신의 장을 적으로 인식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치라는 개념이 없고, 평생 약물 치료와 식이 관리가 필요하다. 복통, 설사, 혈변이 반복되고,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성장 부진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동반된다.
특히 전체 크론병 환자의 약 25~40%가 소아청소년기에 진단된다. 소아 크론병은 성인보다 침범 범위가 넓고 경과가 더 심한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유전과 환경 요인 등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단 등 환경 요인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서도 한쪽이 크론병일 때 다른 쪽이 걸릴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 유전자가 100% 같은데도 절반 이상은 발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류인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전자는 30년 만에 바뀌지 않는다"며 "크론병 증가는 서구화된 식생활 변화 등 환경 변화에 있다. 크론병은 음식이 병을 만들 수도 있고, 음식이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크론병 발생률이 높아진 국가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식생활이 서구화됐다는 점이다. 동물성 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이 많고 식이섬유가 적은 식단, 이른바 '서구화된 식단'으로의 전환이다.
패스트푸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식탁도 30년 전과 비교하면 고기 섭취량은 크게 늘었고, 잡곡밥이나 나물 반찬은 줄었다. 대규모 전향적 코호트 연구들에서 서구화된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은 크론병 발생 위험이 높고, 과일, 채소, 생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사를 하는 사람은 위험이 낮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초가공식도 핵심 위험인자로 지목되고 있다. 초가공식품에 포함된 유화제, 인공감미료, 식품첨가물 등이 장 점막의 보호 장벽을 손상시키고 장내 미생물 환경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서구화된 식단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장 점막의 에너지원이자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짧은사슬지방산을 만들어내는 유익균을 줄인다. 장 점막이 약해지면 장내 세균이 면역 세포를 자극하게 되고,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서 이것이 만성 염증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음식이 크론병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소아 크론병 치료에서 '경장영양요법'(EEN)은 이미 1차 치료로 자리 잡았다. 이는 일반 음식을 완전히 중단하고 특수 제조된 경장영양식만으로 6~8주간 영양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 치료법은 스테로이드와 동등한 관해 유도율(약 80~85%)을 보이면서도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없고,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영양까지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과 북미의 소아 크론병 가이드라인에서 약이 아닌 이 영양요법이 1차 관해 유도 치료로 권고되고 있다.
류인혁 교수는 "경장영양식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손상된 장 점막 장벽을 회복시키며,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한다"며 "소아 크론병 환자들에게 경장영양식은 단순한 영양보충이 아닌, 극심한 복통 속에서도 영양을 공급받고 성장 부진과 영양 결핍을 막는 실질적인 치료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완전경장 이후에도 일반 음식과 함께 경장영양식을 병행하는 '부분경장영양' 역시 관해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미국 식이지침도 'Eat Real Food'(진짜 음식을 먹자)를 핵심 메시지로 제시하며 초가공식품을 명시적으로 제한했다. 이 지침이 나온 배경은 미국의 건강 위기가 있다. 성인의 70%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고, 12~17세 청소년의 거의 3명 중 1명이 당뇨병 전단계에 있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초가공식품 소비가 늘면서 국내에서도 소아비만과 대사질환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크론병을 포함한 염증성장질환도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의 식습관이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류인혁 교수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조리한 음식은 대부분 괜찮다"며 " 잡곡밥, 된장찌개, 나물, 생선구이 등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발효식품이 포함돼 있으며 가공식품이 거의 없는 식단이 장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그는 "탄산음료와 단 음료부터 줄이고, 가공 스낵 대신 과일을 선택하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면 된다"며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과 건강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환경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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