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매장 유산 유존지역 11곳 시추…유산청 "매장유산법 위반"
유네스코 "유산영향평가 회신 없으면 부산 행사서 의제 상정"
유산청 "종묘 앞 재개발 일정 강행 서울시에 강력 유감 표명"
유산청, 서울시 통합심의위 보류 전제 3자 협의체 구성 제안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형사고발과 유네스코 경고로 한층 격화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재개발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매장유산법 위반으로 고발한 데 이어, 유네스코 역시 이 사안을 7월 부산 세계유산위원회 의제로 상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유산청은 16일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세운4구역 내 사업시행인가 대응 언론 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허민 청장은 입장문에서 "발굴 조사 완료조치가 되지도 않은 땅에서 토목공사를 위해 시추를 하는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며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SH와 감독기관인 서울시에 대해 청장으로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유산청에 따르면 SH는 청장 허가 없이 세운4구역 11개소에 지름 80㎜, 깊이 38m 규모의 시추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추는 건축 설계를 위한 지반 조사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유산청은 지난 11일 이를 현장에서 적발했으며, 12일 위법 사항을 통보하고 고발예정 공문을 발송했다. 이어 13일 현장 조사를 거쳐 매장유산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서울 혜화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세운4구역은 유적 발굴조사가 아직 법적으로 완료되지 않은 '매장유산 유존지역'이다. SH의 발굴 조사 완료 신고와 유산청장의 완료 조치 통보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도 발굴 중인 지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시추 등 현상 변경을 하려면 매장유산법에 따라 국가유산청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하고, 시추 과정에서는 매장 유산 조사기관이 참관해야 한다.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현지 보존중인 길이 약 7.5m의 배수로 유구가 공사 구간 안에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협의없이 천공작업이 진행됐다"며 "유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매장유산법 제31조 제2항은 이미 확인됐거나 발굴 중인 매장유산의 현상을 변경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SH가 제출한 유구 보존방안은 2024년 제1차 매장유산분과 문화유산위원회에서 보류된 후 아직 재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허 청장은 이날 설명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최근 보낸 서한에 대해 "지금까지 받은 서한 중 가장 엄중하고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유산청에 따르면 센터는 서한에서 서울시가 두 차례 권고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에 대한 회신 없이 세운지구 개발을 강행할 경우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또 "서울시가 세운4구역의 개발 인허가 절차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입장 확인 서한을 이달 안에 회신하지 않을 경우, 종묘를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공식 현장 실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허 청장은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자칫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 상실 여부를 논의하는 논란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내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검토를 앞둔 '한양의 수도성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서울시는 오는 19일 서울시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통해 4월 중 사업시행인가를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윤정 세계유산정책과장은 "사업시행 인가가 이뤄질 경우 최고 높이 145m로 변경 고시한 내용이 계획을 넘어 행정적으로 확정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허 청장은 서울시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 개최를 보류하는 것을 전제로 서울시장, 종로구청장, 국가유산청장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으로, 1995년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운4구역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 조선시대 한성부의 도시계획 수립과 변화 등을 규명할 수 있는 건물지 약 592동, 우물 199기, 도로, 100m가량의 동서배수로, 이문(里門)지 등이 출토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nowon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