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조선 후기 광산 개발의 효율을 높이고 관(官)의 관리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설점수세(設店수稅)'는 역사에 작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실질적인 운영의 책임은 민(民)이 지지만 수익 배분과 결정권은 관이 갖는 구조로 인해 광산 관리의 책임자는 부재했고, 결국 장기적인 투자를 위축시키며 광산 황폐화를 초래했다. 소유와 경영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가상자산사업자 대주주 지분율 제한' 논의를 보며 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설점수세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해 이용자를 보호하겠다는 당국의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시장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강제적 분산'에 매몰될 경우 자칫 신생 산업의 책임 경영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현재 당국은 기존 사업자들에게 약 3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점유율이 낮은 중소 거래소에는 추가로 3년을 더 부과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한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속도 조절 의지는 읽히지만 업계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단순히 시간을 벌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규제가 글로벌 경쟁 속에 놓인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하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현장에서는 당국이 업계와의 충분한 숙의 없이 규제 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제도권에서 소외됐던 시절을 지나 오늘날 활성화된 시장을 만들기까지 창업주가 가진 지분은 단순한 부의 상징이 아닌, 시장을 개척하는 ‘책임 경영’의 동력으로 작동해왔다. 전통 금융권의 소유 분산 잣대로 시장을 재단하기에 앞서 업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디테일을 고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금융권에서 '주인 없는 기업'이 겪는 비극을 목격해 왔다. 대주주의 힘이 빠진 자리는 관치(官治)의 입김이 스며들고, 국내 자본이 위축된 틈을 타 해외자본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업계의 우려를 단순한 망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분을 잃은 창업주들이 시스템 고도화와 같은 기술 개발이나 보안 투자를 멈추고 엑시트(Exit)를 고민할 것이란 지적도 일리 있게 와닿는다.
이제 공은 시행령과 같은 하위 법령 마련의 단계로 넘어오고 있다. 법안의 큰 틀이 정해졌더라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담을 시행령 단계에서는 반드시 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단순한 기간이나 지분율 자체보다는 각 거래소 규모와 특성에 맞는 유연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용자 보호의 진의는 규제의 강도가 아닌, 제도의 정교함에서 증명된다. 획일적인 규제로 경영의 자율성을 재단하는 것은 행정상 편의일지는 모르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될 수 없다.
당국이 시장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규제를 마련하는 세심한 설계자로 역할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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