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정명훈·KBS교향악단이 그린 말러 5번 [객석에서]

기사등록 2026/03/14 14:32:56

정명훈, 5번으로 '말러 시리즈' 이어가

장송에서 사랑으로…70분의 대장정

트럼펫 팡파르에서 울리의 호른까지 '금관의 존재감'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x 정명훈 말러 교향곡 제5번' 공연에서 무대 후 정명훈이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6.03.14. excuseme@newsis.com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장송 행진으로 문을 열고 사랑의 서정으로 나아가는 말러의 여정이 무대에 펼쳐졌다.

KBS교향악단은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마스터즈 시리즈 I’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말러의 가곡과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부에서  5번 이전 시기 가곡으로 특유의 정서를 먼저 들려준 뒤, 5번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말러 음악의 변천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였다.

이번 공연은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첫 말러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정명훈은 지난해 말러 1번(3월)과 2번(2월) 등 오케스트라와 말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정명훈은 과거 "말러를 지휘하기 위해 지휘자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 x 정명훈 말러 교향곡 제5번'이 개최됐다. 2026.03.14. excuseme@newsis.com

5번은  말러가 2년에 걸쳐 완성했다. 장 출혈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 알마와 결혼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던 시기가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1악장의 트럼펫 팡파르는 장송 행진을 알리는 신호처럼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차가운 금관의 울림 위로 현(絃)이 무겁게 호흡을 이어가며 어둡고 장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흐름은 2악장에서 더욱 증폭됐다. 정명훈은 절제된 지휘를 보이면서도 마치 도자기를 다루는듯한 손짓으로 세밀하게 음을 다듬어가며 화음을 쌓아 올렸다. 후반부 금관의 코랄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만 관악의 압도적인 울림에 비해 현악이 다소 묻히는 순간도 있었다.

5번의 씨앗이 된 3악장부터는 오케스트라는 한층 정돈된 흐름을 보여줬다. 호른 객원 수석 케이티 울리의 연주도 두드러졌다. 섬세한 음의 세기 조절은 어둠 속에서 생으로 나아가려는 흐름을 형상화했다.

4악장 '아다지에토'는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정명훈은 지휘에 앞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되기도 한 이 악장은 말러가 표현하려한 '사랑'이 담겨있다. 정명훈은 현악이 점잖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주문했고, 현악은 차분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만들어냈다. 점차 고조되는 선율 속에서 어둠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x 정명훈 말러 교향곡 제5번' 공연에서 무대 후 정명훈이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6.03.14. excuseme@newsis.com

약 70분간 대장정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호른·바이올린·클라리넷 등 객원 수석의 합류는 이날 말러 교향곡 5번의 무대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1부에서는 말러의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운데 6곡이 연주됐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무대에 올라 말러 특유의 서정과 아이러니가 담긴 노래들을 들려줬다.

KBS교향악단은 오는 5월 말러 6번을 연주한다. 지휘에는 2014년부터 5년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지휘자 요엘 레비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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