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예린 "순전히 운일까 두렵지만 책임감 느껴"

기사등록 2026/03/05 06:00:00

넷플릭스 '브리저튼' 시즌4 주연 맡아

동양계 최초 주연 "어머니 안고 울어"

"노출 수위 부담…두려움 넘어 성장"

손숙 외손녀…"할머니 보며 꿈 키워"

동양 대표 배우 포부 "책임 느낀다"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동앙계 배우가 할리우드 좁은 문을 뚫고 글로벌 OTT 대표작의 주연을 차지했다. 배우 하예린(28)은 자신이 '브리저튼' 시즌4에서 맡은 '소피 백'처럼 단숨에 글로벌 배우 반열에 올랐다.

하예린은 4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시즌4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흥행 주역이 된 과정과 현재 심정을 솔직히 밝혔다.

'브리저튼'은 19세기 영국 사교계를 배경으로 브리저튼 가문 자녀들의 로맨스를 그린다. 새로운 시즌이 공개할 때 마다 글로벌 시청자의 큰 호응을 얻어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꼽힌다.

'브리저튼' 시즌4는 결혼에 무심한 차남 '베네딕트 브리저튼'이 주인공이다. 그는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은빛 드레스의 여인이자 현실의 하녀 '소피 백'과 사랑에 빠진다. 하예린은 시즌4 새 등장 인물인 '소피 백'을 연기했다. 동양계 배우 최초로 브리저튼 시리즈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캐스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가 계신 태안에서 장을 보고 있던 도중 에이전트 전화를 받고 급히 연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냈다. 영상을 제출한 이후 제작진과 온라인 미팅, 상대 배우 루크 톰프슨과 케미스트리 리딩이 이어졌다. 모든 오디션 과정을 마치고 얼마 뒤에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와 강남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며 "같이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주변에서 '저 여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주연이 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는 "'저보다 예쁘고, 재능도 있고, 실력도 좋은 배우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루크 톰프슨은 제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보였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예린은 상대 배우인 루크 톰프슨과 호흡에 대해선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다"며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했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쌓였다"고 했다.

두 배우가 그린 로맨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특히 루크 톰프슨은 한국 팬 사이에서 ‘베서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팬들은 하예린과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해 하예린은 "너무 존경하는 배우이자 친구"라며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면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녀와 귀족의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 이야기. 전형적인 '신데렐라' 서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하예린은 동화 속 이야기와는 다른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데렐라는 왕자가 내민 구원의 손을 잡지만 소피는 바로 잡지 않는다. 거기서 차이가 생긴다"며 "'브리저튼'은 계층, 사회적 지위, 외모 등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고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브리저튼' 시리즈는 노출 수위가 높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예린은 그 점이 부담과 고민으로 다가왔지만 성장의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화면 속 여성의 몸에 대해 비판해도 되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특히 한국은 서구권에 비해 더 엄격한 미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안무인 것처럼 만들어주셨다. 덕분에 배우 입장에서 현장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며 "수위 높은 장면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두려움을 넘어서면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하예린은 2019년 ABC TV 시리즈 ‘리프 브레이크’로 데뷔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서바이버스', 파라마운트+ 드라마 '헤일로'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한국계 호주 배우인 그는 국내애선 배우 손숙 외손녀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하예린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연극을 보며 배우 꿈을 키웠다. 그는 "어린 시절 1인극을 봤던 게 뚜렷하게 기억난다. 할머니가 베개를 아기처럼 들고 우는 장면이었다.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함께 울었다"며 "연기를 통해 위로도 공감도 줄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멋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숙은 연기에 대한 조언은 하지 않았지만 작품을 시청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눈이 안 좋으셔서 TV 가까이 앉아 보는 사진과 함께 '자랑스럽다,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주셨다"며 "할머니가 노출 장면도 봤는데 민망하다고 하셨다"고 했다.

아울러 "할머니가 '예전에는 손숙 손녀 하예린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엔 하예린 할머니 손숙이라고 바뀌었다'고 하셨다"며 "뿌듯하면서도 짠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에서 동양계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동양계를 대표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하예린은 "아직은 시작점에 있다.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 이 운이 다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있다"며 "그러나 중요한 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책임을 가볍게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계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며 "동양인을 대변함에 있어 할리우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유색인종 배우들을 대하는 할리우드의 태도가 변화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그는 "이전보다는 공평함과 평등함이 생겼다"며 "조연이나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도 동양인 배우인 저에게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인 것 같다"고 했다.

하예린은 이 같은 할리우드 변화가 작품에도 담겼다고 부연했다. 그는 "'브리저튼'은 피부색이나 다른 외적 요인으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 사회를 잘 그려낸다고 생각한다"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 촬영 현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브리저튼' 시즌4 홍보 과정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생겼다. 주연인 하예린을 의도적으로 홍보 이미지에서 소외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현장에서 차별적이라고 느낀 점은 없다. 세부적인 면에서 간과된 지점은 있지 않았나 싶다"며 "간과했던 디테일을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나친 비난이나 혐오로 흘러가진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을 없을까. 그는 "모든 작품을 선택할 때 부담감은 있지만 '나에게 호기심을 주는 인물인가, 배우로서 성장시킬 수 있는 인물인가'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게 더 중요한 것 같다"며 "누군가에게 추가적으로 증명해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하예린은 한국 활동도 희망했다. 그는 "한국말을 할 때 호주 발음이 있는 것 같아서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기회가 있다면 하고 싶다"며 "특히 국제적인 영화제에 가는 작품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브리저튼' 다음 시즌 출연 여부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하예린은 "브리저튼 가족에 속하게 되면서 다음 시즌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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