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진 창단 20주년 기념작…16년 만에 다시 무대 올라
고선웅 연출 특유의 익살 속 원작 '막베드'의 메시지 담아
화려한 액션으로 긴박감 더해…연극 데뷔 김준수 존재감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칼을 들었지만, 결국 그 칼끝은 자신을 향한다.
연극 '칼로막베스'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코믹하면서도 서늘하게 풀어낸다. 웃음과 광기가 뒤엉킨 무대는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붙이면서도, 결국 인간 욕망의 비극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칼로막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고선웅 연출이 액션 무협활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극단 마방진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펼치는 연극 퍼레이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초연 이후 16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배경은 원작의 중세 스코틀랜드에서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렝게티 베이'로 옮겨온다. 주인공에게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는 존재는 세 마녀에서 맹인술사로 바뀌었다.
예언을 들은 막베스가 왕을 죽이고 권력을 손에 넣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거듭하다 죄책감과 불안에 빠져 점차 파멸에 이른다는 서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칼로막베스'는 배우들의 현란한 무술과 슬랩스틱 유머로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연이어 펼쳐지는 액션 장면에서 검도, 택견, 유도, 합기도 등 도합 무술 10단의 막베스 역 김호산의 몸놀림은 단연 돋보인다. 격렬한 칼싸움이 펼쳐질 때 흘러나오는 박진감 넘치는 음악도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여기에 고선웅 연출 특유의 익살스러운 대사와 상황이 쉼 없이 이어진다. "칼로 막 베는 막베스", "칼 있으마" 같은 말 장난은 물론 극 밖의 현실까지 끌어와 객석의 웃음을 자아낸다.
"16년 전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수상"을 외치며 작품을 '셀프 홍보'하는가 하면, "마음에도 없는 슬픔을 연기하는 마방진의 연극 배우들"이란 대사로 웃음을 자아낸다.
죽고, 죽이는 비극을 이야기하면서도 온몸과 재치 있는 말로 웃음을 놓지 않는 무대 덕분에 관객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진지하지 않다고 해서 전하는 메시지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작품은 파멸을 부르는 욕망과 권력의 무상함 등 원작이 전하려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웃음 끝에 남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막베스 처 역으로 출연하는 김준수다.
'창극 스타'인 김준수는 국립창극단을 퇴단한 후 첫 작품으로 '칼로막베스'를 택해 연극에 데뷔했다.
막베스 처 역을 맡은 그는 남편 막베스를 부추겨 파멸로 이끄는 욕망의 화신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광기 어린 팜므파탈의 모습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붉은 가발을 쓰고 입술을 짙게 칠한 김준수는 막베스에게 당컨의 살인을 재촉하며 "여보, 웃어요. 웃으라고"를 속삭이며 섬뜩함과 익살을 아슬아슬 오간다. 극 후반 몽유병에 걸린 채 기타를 두들기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욕망의 끝에서 무너진 인물의 말로를 보여준다. 대사 중간중간 창을 하는 듯한 소리로 자신만의 매력도 발산한다.
무대 위에는 배경인 철제 구조물을 제외하고 별다른 장치가 없다. 그러나 구조물 속 사다리와 봉, 극장의 여러 입구와 관중석까지 활용해 배우들은 무대 안팎을 넘나들며 역동적인 공간 활용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무대를 가득 채우며 강한 흡입력을 만든다.
'칼로막베스'는 15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 뒤 다음 달 4~5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10~11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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