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음 2관왕' 권나무 "진짜 '권나무'가 돼 가는 중입니다"

기사등록 2026/03/07 10:00:00

LOVE에서 LIFE까지…4글자 단어들이 빚어낸 기적…'삶의 향기'

소중한 가치들을 조합해 찾아낸 권나무의 新 음악적 영토

[서울=뉴시스] 권나무.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6.03.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시간은 정직하게 흐르지만, 삶은 종종 그 흐름에서 빗겨나 나선을 그린다. 칠판 위 분필 가루가 내려앉는 교실과 기타 현의 떨림이 공명을 만드는 무대 사이, 싱어송라이터 권나무는 그 나선형의 시간을 6년8개월 동안 묵묵히 걸어왔다.

그가 최근 발표한 정규 4집 '삶의 향기'는 단순히 오랜 침묵의 끝이 아니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과 창작자로서의 고집이 충돌하며 빚어낸, 이름 그대로의 '향기'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부동산과 복권이라는 세속의 단어들을 일상으로 받아내며 길어 올린 노래들. 이 내밀한 고백들은 그를 최근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KMA·한대음)' 2관왕(최우수 포크 음반·노래)의 영예로 이끌었다.

첫 수상 이후 10년,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그는 여전히 담담하다. 삶이 언제나 상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상실과 얻음 그 사이의 진실을 응시하는 것. 권나무의 포크는 이제 내면의 뜨거운 발산을 넘어, 타인의 일상을 어루만지는 보편적인 위로의 언어가 됐다. 제자리에 머무는 듯해도 결국 위로 나아가는 나선처럼, 그의 음악은 우리네 삶의 궤적을 닮아 있다.

김성환 한대음 선정위원은 이번 앨범에 대해 "그가 겪은 생활의 변화 속 사색의 경험이 더욱 깊게 녹아들었다. 미니멀한 편곡 속에서도 목소리와 메시지의 울림을 선명하게 키워냈으며, 감정적 성찰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내공이 돋보이는 2025년 한국 포크의 걸작"이라고 평했다. 정일서 한대음 선정위원은 한대음 '최우수 포크 노래'를 받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에 대해선 "소소한 일상이 노래가 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만큼 정직한 노래는 드물다. '부동산'이나 '복권' 같은 평범함과 솔직함이 주는 궁극적 위로를 담았으며, 권나무의 음악적 정점이 이 지점에 이르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최근 서울 용산에서 만나 권나무와 주고 받은 일문일답.

-2015년,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고 10년 만에 다시 받았습니다.

"상이라는 게 음악가들의 꿈이잖아요. 곡상도 과분하지만, 저처럼 계속 앨범 단위로 작업하는 사람에게 '앨범상'은 작품상을 받았다는 의미라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상을 받을 때 머리가 하얘졌어요. 수상 예상 여부를 떠나서 순서가 너무 앞이라 당황했습니다. 다른 장르 후보들 음악을 듣는데 그분들의 떨림이 느껴져서 제가 다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호명돼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작은 스튜디오 겸 공연장에서 라이브 촬영을 겸하고 오셨는데요.

"최소한의 관객분들만 모시고 진행하는데, 그분들께는 공연이지만 저한테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촬영이기도 한 묘한 자리입니다. 팬분들이 한대음 축하한다고 선물도 많이 주셨어요. 다들 부모님 마음처럼 '내가 키운 꿈나무'를 보는 마음으로 와주신 것 같아 감사하죠."
[서울=뉴시스] 권나무.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6.03.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무려 6년8개월 만에 내놓은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은 팬들도 오래 기다렸지만, 본인 안에서도 무언가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창작 과정 자체가 많이 달라졌어요. 생활 모습이 달라지니까 작업 방식도 변하더라고요. 포크 음악이 갖는 메시지의 힘이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은유적으로 담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이제 '생활인'의 성격이 강해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생활인'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일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애기들 돌봐야지, 일해야지… 사실 누구나 그렇잖아요. 첫째가 7살, 둘째가 5살인데 첫째가 올해 학교에 갑니다. 가장 예쁠 때면서도 힘든 시기죠. 집에 많이 있는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20대 때는 감정이 생생해서 그 한가운데 있을 땐 소중함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며 사람이 딱딱해지다 보니 기쁘고 슬픈 감정들이 찾아오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아요. 그래서 그 감정 하나하나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1~3집이 내면의 뜨거움에 집중했다면, 이번 4집은 밖으로 걸어 나온 느낌이에요.

"그때는 내면이 너무 뜨거우니까 그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좀 덜 뜨겁거든요. 내 안에만 갇혀 있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살아가기 위한 다른 방법을 택한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나는 이제 밖으로 나가겠다'고 해서 나가는 건 아니지만, 예전엔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인식하게 된 거죠."

-변화 속에서도 창작자의 주체성을 지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 균형감이 참 좋습니다.

"작품에 매진할 수 있는 퍼펙트한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고집한다는 건, 반대편에서 놓치는 게 생긴다는 뜻이기도 해요. 저는 제가 변화한 만큼 '간신히'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창작은 늘 뒤따라 늦거든요. 내가 뭔가를 알았다고 해서 바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시차가 있어요. 그래서 '나 이거 알았으니까 이렇게 해볼래'가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그래야 내면에서 탁 튀어나왔을 때 진짜 나랑 가깝고 자연스럽거든요."
[서울=뉴시스] 권나무 정규 4집 '삶의 향기' 커버. (사진 = 권나무 측 제공) 2026.03.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첫 트랙 '그렇게, 나도 모르게' 가사에 '부동산'이나 '복권' 같은 단어가 나오는데, 권나무의 입에서 나오니 상징성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그게 참 재밌는 거죠. 그런 단어들이 가사로 자리를 잡을 때 아주 찰나의 긴장감은 있었어요. 원래 쓰던 단어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쓸까 말까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그 자리에 맞기 때문에 나온 단어니까요. 예전과는 좀 낯선 풍경이지만, 제 안의 자연스러운 변화 속에서 나온 말들이라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단어는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피식하게 만드는 위트가 있어요.

"현실은 생생하고 무겁지만, 음악 속에서는 가벼운 비유로 쓰고 싶었어요.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터전에 대한 욕망,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허들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 복권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나 꿈, 허상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라 오히려 자연스럽죠. 단순히 '돈이 없다'는 말보다 훨씬 재밌는 표현 방식이기도 하고요."

-앨범 제목과 커버 디자인에 얽힌 서사도 운명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곡들은 모였는데 제목이 안 잡혀서 한참을 놔뒀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밤 책상에 앉아 낙서하다가 단어들이 갑자기 탁 떠올랐어요. 러브(LOVE), 케어(CARE), 니어(NEAR), 디어(DEAR), 히어(HERE), 기브(GIVE), 힐(HEAL), 리얼(REAL), 라이프(LIFE)… 일상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단어 모양도 비슷하더라고요. 소중한 건 가까이 있다는 니어, 아끼고 사랑한다는 디어, 지금 이 순간인 히어, 치유한다는 힐… 전부 알파벳 네 글자죠."

-그 파편화된 단어들이 어떻게 하나의 제목으로 묶였나요?

"단어들을 조합해보다가 그 안에서 '프래그런스(FRAGRANCE)'라는 글자가 보였어요. 소름이 돋았죠. 삶(LIFE)이란 무엇인가? 생생하게 살아있고(REAL), 치유하고(HEAL), 주는 것이고(GIVE), 사랑하고 돌보고(CARE) 아끼는 것(DEAR)… 이 모든 가치가 담긴 게 바로 '라이프 프래그런스(Life Fragrance)(삶의 향기)'였던 거예요. 앨범 제목, 주제, 커버 이미지, 색깔까지 그날 밤 20분 만에 다 끝났습니다. 몇 개월을 짜내도 안 되던 게 그렇게 한 번에 끝나버리더라고요. 앨범을 왜 내야 하는지 스스로 증명한 기분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권나무.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6.03.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중들은 권나무를 온화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는데,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저는 엄청 급하고 차분한 사람이 아니에요. 원래는 불 같은 성격이죠. '좋은 오해' 덕분에 제가 이렇게 지내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이름대로 산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도 저의 일부가 돼 가요. 예전엔 거칠고 투박했다면 지금은 좀 덜하죠. 진짜 '권나무'가 돼 가는 중입니다. 제자리걸음 같아도 옆에서 보면 나선형으로 조금씩 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저한테는 큰 위안이 됩니다."

-한대음 수상 소감에서 동료 뮤지션들에게 전하신, '나만의 창작 방식'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말하고 내려오면서 아차 싶었어요. '알바하고 일하느라 바쁜데 내가 너무 쉽게 말했나' 하고요. '해라'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 본인의 방식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었어요. 주어진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리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의 부활 소식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권나무 씨를 알린 창구잖아요.

"정말 다행이죠. '공감'은 음악가들에게 '사회적 안전망' 같은 곳이에요. 돈이나 배경을 요구하지 않고, 개인의 내밀한 노래가 보편성을 얻어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게 도와주는 근사한 공원이죠. 세상에 알몸으로 내던져지기 전에 '공감'이라는 옷을 입혀주는 그 호의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그런 놀이터가 사라진다는 건 음악가들에게 큰 집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다시 부활한다니 세상이 좀 멀쩡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투어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창원, 제주, 광주를 돕니다. 평일 내내 일하고 주말마다 투어를 하는 게 체력적으로 딸리기도 하지만, 잘 관리해서 좋은 노래 들려드려야죠. 계속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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