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동행 시대…일자리·산업 재편 논의는 걸음마[AI스나이퍼 下]

기사등록 2026/02/22 07:30:00 최종수정 2026/02/22 07:36:24

전문직 서비스까지 덮친 AI 에이전트…동행은 불가피

'성장 사다리' 사라지는 신입 사원…인력 피라미드의 기형적 재편

실행은 AI, 책임은 인간…전문가의 역할 '감독'으로 이동

[그래픽=뉴시스] 재판매 및 DB금지.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 고객서비스 직원, 변호사 채용을 일시 중단하겠다."

지난해 7월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가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자사의 AI 에이전트 플랫폼 '에이전트포스'가 일부 인력을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AI 에이전트의 확산이 SW 산업을 넘어 법률·회계·금융 등 서비스 산업 전체의 고용 구조와 수익 공식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AI와의 동행이 불가피한 시대가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변화에 맞춰 일자리 구조와 산업 패러다임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간 대신 성과에 과금"…전문직 서비스가 바뀐다


AI 에이전트의 파장은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수익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률·회계·컨설팅 산업은 오랫동안 '투입 시간'을 기준으로 과금해왔다. 변호사의 시간당 수임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계약 검토, 보고서 초안 작성 등 반복·정형 업무가 AI를 통해 단축되면서 기존 방식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 베세머벤처파트너스(BVP)는 'State of AI 2025' 리서치를 통해 AI 네이티브 기업의 확산과 함께 사용량·성과 기반 요금 모델이 부상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단순 인력 규모가 아니라 실제 처리 건수나 산출물 가치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딜로이트도 "2026년 조직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전환 예산의 50% 이상을 AI 자동화에 투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고객은 효율 개선의 이익 공유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법무·회계업계는 '투입 시간'이 아닌 결과 책임과 자문 품질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성장 사다리' 사라지는 신입 사원…인력 피라미드의 기형적 재편

고용 구조에서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과 로펌 시장에서는 최근 수년간 신입 채용 규모가 이전보다 축소되는 흐름이 관측된다. 반복 업무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던 초급 인력의 역할이 자동화되면서, 인력 피라미드 구조가 압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AI 기술 도입 확산이 청년층 일자리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복적·정형 업무를 통해 경험을 쌓던 신입의 성장 경로가 AI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회계사·자산운용가·변호사 등 전문직이 AI 노출 지수가 높은 직군에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AI가 단순 노동을 넘어 인지적·분석적 업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AI 도입의 목적은 인력 감축이 아니라 효율화"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업무 배분과 인력 구성 전략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행은 AI, 책임은 인간…전문가의 역할 '감독'으로 이동

한편, 전문직이 AI에 단순 대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산업계에서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조직과 전문가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이 고도화되더라도 최종 판단과 감독 기능은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가트너는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2027년 말까지 운영화에 실패해 폐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대 대비 가치 불확실성, 비용 부담, 리스크 통제 미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삼일PwC경영연구원도 2025년 9월 발표한 'AI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AI 자체가 일자리의 위협이 되기보다는 AI를 업무 조력자로 활용할 줄 아는 인력이 노동시장 수요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의 역할이 '실행' 중심에서 '판단·감독·책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를 통해 생성형 AI의 주요 영향은 완전한 대체보다 '인간-기계 협업'을 통한 기술 '증강'에 있다고 진단했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일자리를 가져간다는 의미다.

결국 AI와 '동행'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AI 기본법 시행됐지만…일자리 재편 논의는 걸음마 수준

한국에서는 지난 1월 22일 'AI 기본법'이 시행됐다. 고영향 AI 사업자에 대한 사전 고지와 설명 의무, 위험 관리 계획 수립 등을 규정하고 국가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제도적 틀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AI 시대의 경쟁력은 제도뿐 아니라 인재 확보와 재교육 체계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의 'AI Index 2024/202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AI 인재 순유출 규모가 인구 10만명당 약 0.36명 수준으로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급 인재 유출과 재교육 미흡 문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직업훈련 체계가 여전히 전통 산업 구조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대상 AI 코딩 교육이나 디지털 기초 프로그램은 있지만, 중장년층이나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실질적 직무 전환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경쟁력이 갈리는 시대가 됐다"며 "AI 시대에 걸맞은 일자리 구조와 산업 패러다임을 재정의하기 위한 범정부·범산업 차원의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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