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관점에 머문 이주여성 체류 정책 전환해야
'종속형 체류 제도'가 인권침해…노동허가제 요구
지역사회 인식이 최우선…마을 단위 교육도 시급
[무안=뉴시스]박기웅 이현행 기자 = 전남의 이주민 수는 최근 10년 사이 급증했다. 농어촌과 산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은 이미 지역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됐다. 그러나 인구 증가 속도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정책은 충분히 정비되지 않아 개선이 시급하다.
◆종속 아닌 권리 중심…체류 정책의 전환
전남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한국어 교육, 자녀 돌봄, 문화 적응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이 여전히 이주여성을 '적응을 도와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만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적응'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정책을 이주민들의 권리 보장과 차별 해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쟁점은 '배우자 연동 체류' 구조다. 결혼이민(F-6) 체류 자격은 한국인 배우자와의 혼인 관계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가정폭력이나 갈등이 발생해도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체류 자격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폭력 상황에서도 문제 제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주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처럼 여기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며 "한국인 배우자에게 종속되는 가부장적이고 혈통 중심적인 체류 정책과 행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차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출발점이다. 전남도와 일선 시·군 차원에서 이주민에 대한 종합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책 효과를 점검하고 보완할 기반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장 지원 체계 역시 강화가 요구된다. 전남이주여성상담소는 지침상 8명까지 채용할 수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6명만 근무하고 있다. 22개 시·군을 돌며 상담과 법률 자문, 통역, 의료·보호시설 연계, 체류 지원까지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관련 인프라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불리해도 참아야" 노동 이주 제도 한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가 반복되는 것 역시 구조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 이주 제도인 고용허가제(EPS)는 이주노동자가 특정 사업장에서만 근무하도록 하고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다. 이 구조는 임금 체불이나 열악한 근로 환경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일터를 쉽게 벗어나거나 신고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든다.
사실상 '사업주 종속형 체류 제도'로 전락해 폭언과 폭행, 임금체불, 과로 등 인권침해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게 노동인권 단체의 설명이다.
인권침해에 대한 당국의 감독·구제 시스템의 행정적 문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고용노동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 지자체 등 관리 당국의 감독이 부실하고 신고 후 구제 절차도 길다. 피해자는 체류 불안정으로 신고를 포기하거나, 신고 후에도 강제출국이나 보복 해고 등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손상용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노동 이주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과 '노동허가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도 이주노동자를 정착·체류로 안내하기 보다 임시 노동력이나 도구적 자원으로 보는 사회 인식이 뿌리가 깊다. 우리 사회 노동·인권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사회 인식 변화 최우선…마을 단위 교육 시급
제도 개선과 함께 지역사회 인식 변화가 가장 큰 핵심 과제로 제시된다.
박빛나 전남여성인권단체연합 대표는 "이주여성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농어촌 지역 특성상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이 중심이 되는 인식 개선 교육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관련 교육을 정책으로 추진해 이주민을 마을 구성원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은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남은 다문화 가구와 출생아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며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인식 개선 교육과 함께 제도적 책임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정부의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은 결혼이주여성과 가족 중심에 머물러 있다"며 "모든 이주민과 지역사회 인권을 아우르는 포괄적 정책 틀로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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