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큰아들이 때렸다", 큰아들 "아빠가 시켰다"
재판부, 고뇌 속 검찰에 공소장 변경 수회 요청
최종 판단 '큰아들이 폭행해 살해, 계부는 묵인'
[전주=뉴시스]강경호 기자 = 중학생 의붓아들이 학대당해 숨진 사건을 두고 폭행의 당사자로 지목된 계부와 검찰의 법정 공방 속 재판부는 피해 아동의 형이 폭행을 저질렀고, 계부는 이를 묵인·방조했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양진수)는 1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살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41)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다만 본래 기소됐던 아동학대살해 혐의는 무죄로 인정됐고, 예비적 공소사실(주가 되는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추가로 제기하는 공소사실)인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모든 혐의 자백했던 계부, 항소심서 돌연 "내가 죽이지 않았다"
A씨는 앞선 1심에서는 자신이 피해 아동인 B(10대)군을 폭행했다며 모든 혐의를 인정, 징역 22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 들어서면서 재판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자신이 아들을 폭행한 것이 아니고 B군의 형인 C군이 그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변호인은 지난해 11월12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피고인(A씨)이 법정에서 했던 자백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허위 자백"이라며 "피고인은 당일 B군을 폭행한 사실이 없다. (B군을 살해한) 진범은 그의 친형인 C군"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A씨의 친형이 증언대에 서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 이전 C군이 자신에게 "내가 동생을 때려서 죽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진범으로 지목된 피해 아동의 형 "아빠가 때리다가 나를 보고 시켰다"
A씨에게 진범으로 지목된 C군도 함께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최초 경찰 조사에선 자신이 동생을 때렸다고 진술했다가 곧바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진술을 바꿔왔다.
증언대에 선 C군은 "먼저 아빠가 동생을 때린 뒤 저를 보고 동생을 때리라고 시켰다"며 "그러다 이제 그만하라고 해 쉬고 있었는데, 동생이 계속 아프다고 하다 어느순간 의식을 잃어서 아빠가 병원으로 옮겼다"는 또 다른 새 진술을 내뱉었다.
그동안의 거짓 진술에 대해선 "처음에 경찰 조사나 큰아빠(A씨의 친형)에게 한 자백은 아빠가 잡혀가면 돌볼 사람이 없어 차라리 제가 잡혀가야겠다고 생각해 거짓으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진술 속 재판부 고뇌…공소장 변경 여러 차례 요청
유일하게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자 재판부 역시 공판기일 내내 증인과 피고인을 향한 질문을 수차례 던졌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부는 검찰 측에 여러 차례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있었던 항소심 5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재판부도 혼란스러워 고민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진실이라고 판단된 내용이 공소사실에 없으면 안 되니 변수를 줄여야 할 것 같다"며 아동학대살해 단일 혐의로만 기재된 공소사실에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추가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 추가로 "A씨의 지시로 나도 동생을 때렸다"는 C군의 증언을 일부 받아들여 A씨가 C군을 도구로 사용해 살해·치사 행위를 했다는 '간접정범'의 법리를 적용한 공소사실도 덧붙이는 것을 고려해달라고도 했다.
공소사실이 4가지(직접 살해·폭행치사·간접정범 살해·간접정범 치사)로 늘어났음에도 재판부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했다. 6차 공판에서는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망과 직결된 폭행이 없었고, 폭행을 하라는 지시도 없었지만 C군의 폭행을 봤음에도 묵인한 점도 치사의 죄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공소장을 다시 변경해달라"고 말했다.
◆7차례 재판 끝 재판부 판단은…"폭행은 큰아들이, 계부는 방조했다"
끝내 재판부는 마지막에 고려한 공소사실이 진실과 가장 근접한 것으로 봤다. 즉, A씨가 직접 B군을 폭행해 살해하거나 이를 지시하진 않았지만 C군의 강한 폭행을 목격했음에도 이를 묵인·방조해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보험 업무를 처리하느라 자리에 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피고인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공동현관 센서등, 보험 업무가 간단한 점을 고려했을 때 C군의 폭행 당시 피고인은 자택에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군의 폭행 이전 피해자를 향한 학대가 있었고, 이후 폭행이 있자 이를 동조하며 학대의 고의로 묵인·방조하는 그 자체로의 학대 행위를 했다"며 "당시 폭행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함에도 피고인은 이를 묵인해 사망에 기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C군의 폭행은 피고인이 내내 보인 강압적 행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피고인의 책임이 매우 크다"며 "숨진 피해 아동을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면서도 목격 사실 자체도 부인하는 점 등을 볼 때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 양형 기준에 따른 권고형인 10년7개월을 초과한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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